낙서장2006. 9. 27. 23:12

지난 월요일밤이었나 보다. KBS1 에서 우연히 '객석과 공간' 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영화 음악을 주제로 한 방송이었는데, 러브홀릭이 외출의 주제가를 막 부르고 난 직후였다. Gabriel's Obeo 를 연주한다고 하길래 잠을 조금 쫓아가며 지켜보기로 했다. 오리지널처럼 오보에를 이용한 연주는 아니었으나, 트렘펫으로 편곡하여 연주한 곡도 듣기 좋았다. 중간중간에 영화의 장면도 들어가 있어서 더 감동이 더했다.

'미션'이라는 영화는 종교적인 연유로 먼저 보게되긴 하였으나, 지금와서 보면 종교를 소재로 한 인간간의 갈등에 대한 고찰이 아닌가 싶다. 그 영화를 통해 로버트 드니로와 제레미 아이언스라는 배우, 또 롤랑 조페라는 감독에 대해 알게된 계기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로버트 드니로보단 제레미 아이언스를 더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얼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선악의 이중성과 특유의 목소리인것 같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이긴 하지만, 그리 대중적이지는 못한 배우이기도 하다. 그가 출연했던 영화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데미지', '다이하드3', '영혼의 집', '라이온킹' 등, 90년대 작품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최근에는 조연급으로 여러 영화들에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예전만큼의 카리스마는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좀 아쉽긴 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작품은 역시 '라이온킹'이다. 얼굴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의 비굴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Be Prepared' 는 지금 들어도 멋진 노래다.

엔니오 모리꼬네는 말할 필요도 없는 최고의 영화음악가 아니던가. 황야의 무법자 부터 시작해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미션, 시네마 천국, 언터처블, 햄릿, 사선에서, 시티 오브 조이, 러브 어페어 등. 작년에는 한국 방한 공연이 추진되다가 기획사의 진행 미숙으로 공연이 무산되어 비리는 일까지 있었다.

롤랑 조페 감독은 킬링 필드로 이름을 알린 후, 미션, 시티 오브 조이, 주홍 글씨등의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렸으나 최근에는 작품 활동이 뜸하다. 하지만, 그의 예전 영화들을 다시 봐도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한다.

Gabriel's Oboe 이후에는 철도원의 주제가를 류이치 사카모토의 딸이라는 가수가 불렀다. 철도원. 언젠가 누구에게도 얘기한 기억이 나는데, 철도원의 원작을 지은 작가인 '아사다 지로'의 책에 파묻혔던 때가 생각난다. 철도원이 실려있던 단편집, 철도원.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철도원이라는 단편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파이란'의 원작인 '러브레터'라는 단편이 같이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99년경에 접했던 이 책을 통해 아사다 지로의 문체와 그의 스토리 텔링방식에 빠져든 나는 군대시절의 대부분을 그의 책과 함께 보냈다. 천국까지 백마일, 은빛 비, 프리즌 호텔, 지하철, 장미도둑.... 장편은 천국까지 백마일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의 글은 단편에서 더 빛을 발한다. 그의 문체는 함축적이면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감동을 자아낸다. 철도원 영화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과 다카구라 켄의 연기까지 더해져서 잔잔한 감동을 전해줬다. 앳된 얼굴의 히로스에 료코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 다음엔, 조성우 영화 음악 감독의 음악들이 채워졌다. 선물,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타이틀 곡들. 선물은 영화보단 음악이 훨씬 더 기억이 남는 작품이었다. 시크릿 가든이 연주한 주제곡을 교향악 연주 버젼으로 듣게 되었는데, 교향악이 더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는 느낌이다. 여고괴담은 영화의 독특함에 힘을 실어주던 그 주제가를 다시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조성우씨는 허진호 감독의 영화 작업을 많이 같이했다. 허진호 감독의 잔잔한 스타일에 조성우 감독은 억지스런 감동을 주려 노력하지 않고, 영상과 어울리는 음악을 잘 만들어내어 그의 영화의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몸은 피곤했으나 잠깐 사이, 한 30분밖에 보지 못한 프로그램이었지만, 보면서, 들으면서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잠깐 사이에 내가 봤던 영화, 책, 음악등 많은 것들이 머리속을 스쳐가는....... 그리고 내가 너무 삶에 여유없이 치여서 하루하루 대충대충 수습하며 살고 있는 오대수 같은 인생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 서글퍼지기도 했다. 이젠 책 한권이라도 좀 찾아서 읽고 좋은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그렇게 조금이라도 여유를 찾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다시 챗바퀴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날 보면, 그 여유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찾을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인 생각이 다시 눈을 든다. 조금만 참고, 10월 9일부터 있을 휴가를 기대해 봐야 겠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겠지? 그러길 기원해 본다.......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