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은 종합 무대예술이라 불릴 정도로 여러 장르의 혼합으로 구성된 행위 예술의 하나다. 노래, 음악, 춤, 연기. 이 4가지 중의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실패하는 것이 뮤지컬이다. 그렇기 때문에 뮤지컬은 도전하기 매우 어려운 장르의 하나다. 한 분야에만 치중하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획이나 제작자로서는 투자비에 대한 충분한 이윤을 기대하기 어렵기에 그리 만만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국내에서는 라이센스 뮤지컬을 선호하고, 일단 성공한 뮤지컬을 재탕, 삼탕으로 다시 무대에 올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아가씨와 건달들', '그리스', '맘마미아'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초반의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네임 밸류가 있는 뮤지컬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2번째 최장기 공연을 기록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을 들 수 있을 것이다.

< The Phantom of the Opera >

1986년 런던 초연이래로 전 세계적으로 공연되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을 넘어서 이제 영화로까지 영역을 넓힌 작품이다. 영화가 뮤지컬로 제작되는 경우는 많이 있다.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은 반대의 경우이다. 뮤지컬 이전의 오페라의 유령의 영화화 작업은 3회나 있었다. 가스통 루루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여 3회나 영화로 제작되었으나 그 영화들은 성공적이지 못했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만나 뮤지컬로서 다시 탄생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이제 뮤지컬의 대명사처럼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나 원작 소설은 그렇지 못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2004년 작 영화 역시도 뮤지컬을 충실하게 스크린에 옮기는데 주력했다. 국내에서 2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들일 정도로 인기가 좋기도 했다.

2002년 국내 라이센스 공연은 윤영석, 이혜경, 류정한 이라는 세명의 젊은 뮤지컬 스타를 배출하고, 20만명 이상이 관람함으로써 국내 뮤지컬 시장의 숨은 수요를 발굴하는 데 기여했다. 번역된 가사와 노래들을 이용함으로 해서 내용 전달에 중점을 두고 공연을 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원어가 주는 느낌을 완전히 살리지는 못한 한계를 여전히 지니고 있었다.

2005년 원어 공연은 RUC 와 남아공, 중국, 한국 3국이 제작비 분담을 통해 이루어 졌으며, 이미 20만장의 티켓 가운데 절반 가량이 다 판매되었을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 글에서는 2002년 한국어 공연, 2004년 영화, 2005년 원어 공연의 세가지 버젼의 '오페라의 유령'을 비교해 보려고 한다. 이런 비교 자체가 무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각각의 일장일단을 짚어보는 것도 의미는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먼저 본격적인 비교에 앞서 예술장르로서 영화와 뮤지컬의 차이를 짚어보자.

간단히 말해 영화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콘텐츠를 대량으로 제공할 수 있다. 물론 극장의 사운드나 화질에 따른 퀄러티의 차이를 보일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모든 극장에서는 동일한 콘텐츠를 상영하게 된다. 차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겠는가를 고려치 않고 말그대로 콘텐츠의 측면에서 볼때 말이다.

그러나 뮤지컬이나 연극은 다르다. 그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 그 배우의 목소리에 따라, 실수를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실시간으로 무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뮤지컬이다. 같은 뮤지컬을 봤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이 배우가 높은 소리에서 삑사리가 4번 날 수도 있는 것이고, 침을 튀기면서 노래를 부를수도 있는 것이고, 심지어 오케스트라에서 삑사리가 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가 몇번의 재촬영을 통해 최상의 화면을 찍어낼 수 있는 선택지가 존재한다고 하면, 뮤지컬은 오로지 연습과 그날의 상황만이 그 날의 공연의 퀄러티를 결정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차이는 현장감이다. 영화는 시각적으로 스펙타클한 화면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감독이 의도한대로 연출된 철저히 감독의 시각에서 이렇게 보라고 정해져 있는 프레임안에서 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뮤지컬은 다르다. 주연들이 움직이는 공간에 집중하고 그들만을 볼 수도 있으나, 그 외의 세부적인 무대장치를 보고 싶거나 조연들의 연기를 보고 싶으면, 그쪽으로 보면 된다. 원하는 대로 볼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지는 것이다.

영화적 완성도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그리 뛰어나다고 보기는 힘들다. 뮤지컬을 기반으로 한 시나리오이기에 세부적인 인물들의 세부 묘사나 뮤지컬에서 보여주지 못한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뮤지컬을 열심히 옮기기 위한 시도정도로밖에 비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각적인 면에서는 매우 뛰어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페라 극장 묘사나 그 배우들에 대한 묘사등은 뛰어나다. 사건의 순서를 조금 바꾸어 배치하여 이야기의 개연성을 더 확보한 것도 괜찮은 시도였다.

그러나 오리지날 뮤지컬의 힘은 영화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의 만족도를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이들이 실망하는 샹들리에의 상승이나 하락이 약한 것은 어쩔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뒤로 길게 설치되었더라면 더 속도감 있고, 더 강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본격적인 공연에 들어가서 첫 대사를 듣는 순간, 내가 늘 들어오던 OST 와는 달리 왠지 좀 음침하게까지 들리는 경매인의 소리가 나를 좀 당황하게 하기는 했지만, 곧 OST 는 잊고 극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감이다. 샹들리에가 들리면서 웅장하게 퍼져나오는 Overture 는 사람을 전율시킬 정도의 힘을 발휘했다. 그와 함께 기둥과 천장을 가리고 있던 천들이 100% 수동으로 사라지며(끌어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재현시켜 주었다.

전반적으로 크리스틴의 힘이 많이 달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정말 그리 뛰어난 프리마 돈나가 될 수 있을 정도의 가창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칼롯타와 피앙지, 앙드레와, 파르맹의 연기는 극의 감초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다만 이들이 제 실력을 보여주는 합창 부분이 관객들이 자막을 보면서 듣지 않으면 누가 무슨 노래를 하는지 알수가 없기에, 양날의 검처럼 노래와 무대를 보자니, 내용을 모르겠고, 내용을 위해 자막을 보자니, 노래를 놓치는 상황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멕 지리 역할의 노지현씨는 한국어 공연시에도 같은 역할을 맡았던 배우다. 같은 역할이기는 하지만 세부묘사에서는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원래도 좀 작으시긴 하지만, 이번엔 외국배우들이 좀 커서 그런지 더 작아보였다.)

극의 또 다른 주인공인 라울은 세부 묘사가 좀 부족하고 카리스마가 부족해 팬텀과 제대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보통의 연기를 선 보인듯 하다.

그에 비해 팬텀은 강렬한 카리스마와 세밀한 심리 묘사로 멋진 연기를 선보였다. 배우가 하는 조그만 동작 하나하나가 무대예술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영화가 고정된 프레임으로 배우를 묘사하기 때문에 심리 전달이 쉬운편이라면, 무대 예술에서는 배우의 돌아서는 동작 하나, 약간의 손 떨림으로 표정을 보기에는 너무 먼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 팬텀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냈으며, 세밀한 심리 묘사와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관객들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그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 다른 배우들과 앙상블을 약하게 만들어 버린 것도 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또, 이번 공연은 영화와 같은 맥락에서인지 성적인 요소가 더 강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Point of no return 같은 곡도 영화에서 섹슈얼한 느낌을 강하게 살리는 안무를 이용했듯이, 이번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외적인 부분에서 무대의 역동성은 2002년 한국어 공연보다 부족한 듯 했다. 한국어 공연시에는 5번 박스를 무대 밖에 배치함으로 해서 좀 더 흥미로운 무대 설정을 보였으며, 특히 샹들리에 장면은 한국어 공연이 더 나았던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그 외에 무덤에서의 파이어 볼 장면은 왠지 허접해 보이는 파이어 볼 발사에 제대로 불이 붙지 않은 것도 있었다. 또 아쉬운 부분은 역시 자막 부분이다. 가독성이 그리 좋지 않았으며, 모든 자막 공연이 다 그렇듯, 모든 대사의 전달들이 불가능하다보니, 놓치는 부분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 OST 를 열심히 듣고 가고, 대본도 열심히 읽고 갔건만, 그래도 놓치는 부분은 생길 수 밖에....

이런 공연에서 연출의 역할은 매우 한정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미 공연을 몇번씩 보고 영화도 관람한 이들에게 어설픈 변형은 그 극의 퀄러티를 떨어뜨릴수 있기 때문에 그런 모험을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세부묘사에서 좀 아쉬움이 남을수 밖에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아쉬움은 어찌보면 칭얼거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약간의 아쉬움마저 없는 공연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실, 오페라의 유령은 팬텀을 위한 뮤지컬이다. 그리고 이번 원어 공연은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었다. 팬텀의 카리스마에 사로 잡힌 2시간 30분동안, 정말 몰입해서 즐겼던 것 같다. 귓가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연이 끝나고 입에서 흥얼거리며 즐길 수 있는 공연. 우리나라 뮤지컬에도 이런 뮤지컬이 이제 등장했으면 하는 소망이다.

팬텀과 라울, 크리스틴의 삼중창이 귓가를 울리는 듯 하다.

P.S. 팬텀도 포스를 사용한다. 크리스틴의 팔을 움직이는 손짓과 문을 손짓하나로 열고 닫는 걸 보면, 분명히 강력한 포스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