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50만을 넘기고 순항하고 있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지난번 포스트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 대한 간략한 감상을 다뤘다면, 이번 포스트에서는 2회차 관람후에 느낀 것과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조금 풀어볼까 한다.
< 배트맨 - 3부작 >
* 스포 있음 *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은 공포에 의해 탄생한 영웅의 시련과 극복, 전설로 마무리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리즈가 유난히 악당히 강조되는 면이 있지만, 결국 이 영화들의 주제는 배트맨이자 브루스 웨인이다. 브루스 웨인에 방점을 찍고 보게 되면 더 확실해 진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전설의 탄생을 다뤘다면, 다크 나이트에서는 주인공의 몰락을 다룬다. 그리고 라이즈에서는 몰락과 시련을 극복하고 전설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신화의 모습이다.
전설의 시작 - 배트맨 비긴즈
비긴즈를 먼저 살펴보면, 비긴즈는 거의 한시간 가까운 시간을 왜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 되기로 했고, 배트맨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는 배트맨의 탄생에 대해 논리적으로 접근해서 현실성을 부여한다. 어린시절 동굴에 떨어져 박쥐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브루스 웨인이 왜 범죄를 증오하게 되고, 어떻게 악과 싸울지 배우고, 어둠의 사도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배운 검술과 무술, 쇼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등, 배트맨이 앞으로 쓰게될 기술들에 대해 논리적으로 풀어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웨인 집안이 어떻게 고담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노력으로 도시는 불황을 이겨내고 살어 남을 수 있었지만, 웨인 부부가 살해당하고 브루스마저 사라지고 난 고담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린 브루스였지만, 고담은 부모님의 애정이 서린 도시다. 그가 목숨을 걸고 고담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고담은 성서의 소돔과 고모라의 글자를 섞어 만든 타락의 도시로 설정되어 있다.) 어둠의 사도들은 고담을 파멸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고, 그것이 이번 라이즈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논리적 탄생의 과정에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 박쥐와 추락에 대한 공포의 이미지다. 이 추락에 대한 이미지는 다크 나이트에서 이어진다.
영웅의 시련 - 다크 나이트
다크 나이트는 마지막 장면을 먼저 언급해야 하는데, 바로 투페이스와 함께 추락하는 배트맨의 이미지다. 도시의 영웅이 될 수 있었던 하비 덴트를 투페이스로 죽게 만들고, 스스로 살인 혐의를 뒤집어 쓴 배트맨이 단순히 가면 쓴 무법자에서 살인자로 떨어지게 되는 추락의 이미지가 다크 나이트의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이 영화는 배트맨이라는 타이틀을 쓰지 않은 최초의 영화기도 하고, 히스 레저의 조커와 투페이스라는 걸출한 악당을 두 명이나 등장시켜 배트맨을 뒤로 밀어내버린 느낌마저 준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배트맨의 몰락을 위해 철저히 짜여진 작품이다. 영화내내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수 없게 몰아치는 영화다. 스스로 가면쓴 영웅을 벗어내기 위해 찾아낸 백기사인 하비 덴트를 목표로 삼고, 배트맨의 기대와는 정 반대의 투페이스로 만들어 낸 조커. 조커의 심리 게임에 의해 레이첼을 잃어버린 배트맨의 멘붕. 인간이 과연 정말 선한가에 대한 의문까지. 히어로물에서 찾아보기 힘든 무거운 주제와 연출로 만들어진 걸작이다. 결국 영화는 투페이스를 영웅을 만들어낸 배트맨이 몰락하고 끝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개에게 쫓기는 처령한 신세다. 그래도 마지막 제임스 고든의 대사와 한스 짐머의 음악은 영화의 끝장면과 너무 잘 어울린다.)
영웅의 부활 - 다크 나이트 라이즈
마지막 편인 라이즈는 배트맨이 돌아와야만 하는 상황이 되고 8년만에 몰락한 어둠의 기사에서 영웅으로 다시 올라서서 신화를 완성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다크 나이트가 철저하게 배트맨을 바닥으로 떨어뜨렸기 때문에, 그를 다시 불러내는 것도 충분한 노력과 개연성이 필요하다. 놀란 감독은 이 과정도 차근차근 준비한다. 8년이라는 시간동안 칩거하던 영웅을 다시 필드에 서게 하는 준비 과정이 약 1시간 정도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고담시도 지금까지와의 시련과 다른 큰 시련을 겪는데, 하비 덴트가 영웅이 아니었다는 심리적인 충격과 베인이 보여주는 폭력성이다. 베인은 심리적인 충격과 물리적 폭발, 죄수들의 해방이라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장치들로 고담시를 장악한다. 거기에 배트맨이 없이 저항하는 블레이크와 고든도 고담을 지키는 중요한 축이 된다. 배트맨을 살펴보면 이 영화내에서의 그는 다시 한번 큰 시련을 겪는데, 이것으로 인해 브루스 웨인은 추락과 공포라는 두 가지의 장애를 완벽하게 극복하는 데 성공한다. 육체적인 것과 공포에 대한 두 가지 말이다. 그가 갖힌 감옥은 라자루스의 핏이라는 곳인데, 원작만화에서는 라즈 알 굴이 이용하는 악마의 동굴이지만, 영화에서는 단순한 감옥으로 사용한다. 이 동굴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는 탈출 불가능한 곳이지만, 브루스 웨인이 허리가 부러지는 시련을 당하고도 극복해 내고, 죽음의 공포를 인정하고 그 공포를 자신의 힘의 원천으로 사용하고, 추락한 곳에서 다시 올라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결국 배트맨은 베인과 어둠의 사도들을 이끄는 탈리아 알 굴을 제압하고 고담을 살리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가장하며 배트맨을 영웅으로 퇴장시키고, 알프레드가 바라는대로 자연인으로의 삶을 살기 시작하며 영화는 마무리 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악당들이 더 튀는 배트맨 시리즈이긴 하지만, 이 시리즈는 분명히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의 삶을 시작하고, 좌절하고, 극복하고 배트맨으로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배트맨 전설의 얘기다. 전형적인 신화의 구조지만 놀란은 현대적인 시각과 현실과의 접목으로 매우 현실과 닿아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사실 시리즈중의 2편인 다크 나이트는 히어로물이라기 보단 너무 잘 만든 범죄물이어서 튀기도 하지만, 세편을 함께 엮어서 보면 확실하게 이 영화는 브루스 웨인의 얘기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고 있는 악당들의 면면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편에서는 라스 알 굴과 허수아비가 중요한 악당이다. 허수아비는 라스 알 굴에게 이용당하기만 하는 역할이라 좀 낭비된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3편까지 꾸준히 등장하며 고담에 해악을 끼치는 중요한 악당이다. 그러나 라스 알 굴은 시리즈의 1편과 3편을 아우르며, 부모님처럼 지키고 싶은 고담시를 꾸준히 위협하는 인물이다. 상대적으로 배트맨의 캐릭터를 잡는데 긴 시간을 쓰는 영화이기 때문에 눈에 띄는 활동 시간은 길지 않지만 배트맨의 스승으로서의 역할로도 중요한 악당이다. 다크 나이트는 조커와 투페이스라는 걸출한 둘을 등장시켰기에 배트맨의 입지를 줄여버린 면도 있다. 조커는 투페이스를 타락시켜, 배트맨의 희망을 꺾어 그를 어둠의 기사로 만들어 몰락시켜버릴 정도로 강한 인물이다. 라이즈에서는 베인과 탈리아 알 굴이 등장하는데, 베인이 육체적으로 배트맨을 능가하는 강함을 지녔다면, 탈리아는 베인을 이용해 아버지의 뜻을 잇는 여자다. 베인은 배트맨의 허리를 꺾음으로해서 육체적 좌절과 고담의 파멸을 보여주며 정신적 고통을 함께 준다. 탈리아는 베인의 뒤에서 고담의 파멸만을 위해 노력하는 집념의 여인이다. 사실 탈리아의 등장으로 인해 베인이 마지막에 너무 급하게 소모되어 버리는 느낌이 없지 않아 아쉽기는 하다.
이제, 라이즈 2회차 관람후에 느낀 것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1회차에 보던 것보다 더 논리적인 구석이 보인다는 거다. 먼저 베인이 왜 폭탄을 바로 터뜨리지 않는가 하는 것은 배트맨을 감옥으로 끌고간 후에 하는 대사에서 나타난다. 바로, 거짓 희망을 심는다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시민들에게 혁명이라는 이름하에 무정부 상태의 삶을 즐기라고 권하지만, 사실 그가 바라는 것은 고담의 파괴다. 그러나, 브루스 웨인에게 감옥의 입구의 빛을 보며 거짓 희망을 가지듯, 고담 시민들에게도 살 수 있다는 거짓 희망을 주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죽을 운명이었던 그들을 살리기 위해 배트맨이 다시 돌아오기 위한 의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블레이크에게 마스크를 쓰라고 권하고, 그에게 마지막으로 배트 케이브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은 악에 대항하는 상징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넘겨주기 위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고, 영화의 중간중간의 대사에서도 그것들이 드러난다. 미란다 테이트가 탈리아 알 굴이라는 느낌의 대사는 이미 초반부에 무도회장 장면에서 그녀의 대사에서 나타나는데, 바로 세상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대사인데, 이것은 어둠의 사도단의 모토이며, 라스 알 굴의 입에서도 나오는 대사다. 처음 관람때는 그냥 넘어갔던 부분이지만, 두번째 관람에서 대사를 자세히 들으니 그 대사가 들렸다. 전체적으로 2회차 관람이 더 만족스러웠던 영화가 아닌가 한다.
결론적으로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은 만화에서 탄생한 히어로를 현실로 불러와 현대적 신화를 완성해낸 것이다.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 3부작은 지금까지의 히어로 영화의 격을 한차원 업그레이드시킨 작품들이다. 판타지 영화에서의 피터 잭슨, 3D영화의 제임스 카메론, SF영화의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처럼 슈퍼 히어로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연 감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포스터 문구대로 배트맨의 전설은 아쉽지만 이제 끝났다. 이젠 내년에 나올 슈퍼맨 리부팅 작품인 'Man of steel' 의 각본과 제작자인 크리스토퍼 놀란, 과연 어떤 작품이 나올지. "I believe in Christopher Nolan".
P.S. 워너와 DC는 슈퍼맨 리부트를 하고 나서 배트맨 리부트를 다시 한다고 한다. 과연 누가 할런지. 완전 독이 든 성배인데. 어떻게 해도 까일텐데. ㄷㄷㄷ
P.S. 2 워너와 DC는 리부팅이 끝나면 저스티스 리그를 한다고 한다. 그린 랜턴도 죽쒀서 과연 잘 될지. 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