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은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보기드문 독자적인 브랜드다. 박찬욱과 봉준호가 충무로로 대변되는 메이저 영화계의 스타라면, 김기덕 감독은 주류와는 벗어난 본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오해를 빚기도 하고, 자신의 조연출로 키웠던 장훈 감독과의 문제도 있었고, 구설수에 많이 올랐다. 바로 지난 작품인 아리랑에서 그런 본인의 인생을 다루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은 흔히 말하는 문제적 감독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피에타 >
* 스포 있음 *
그러나 피에타는 지금까지 알려진 그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영화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영화적인 무게로 봤을때도, 충분히 강렬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잘 알려진대로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를 조각한 피에타 상을 모티브로 한다. 그런만큼 종교적 색체가 강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강도가 사는 곳은 청계천 공구상가에 한 건물. 그의 집 창문에서는 건너편 교회간판이 또렷이 보인다. 또, 주인공의 이름은 강도다. 이강도. 예수와 함께 양옆에 매달렸던 강도에서 따온 걸까? 강도의 시체도 강도의 어머니가 그렇게 안고 있었을까? 포스터의 장미선은 강도의 엄마로서 강도를 안고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에서 느낄 수 있는 모성을 가져왔지만, 그 모성은 강도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는 초반부에 강도의 악행을 보여주며 치를 떨게한다. 먹고 살기 위해 사채를 쓴 사람들의 신체를 훼손하도 보험금을 타내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의문을 갖게 한다. 정말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래서 감정적 몰입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편에서 영화를 보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에 장미선이 등장하면서부터 흐름이 변한다. 장미선에 의해 흔들리는 강도를 보며, 그에게 조금씩 동화되기 시작한다. 결국은 모성이 결핍된 불쌍한 인간인 뿐인거라고 조금씩 마음을 열고 몇가지 에피소드들을 통해 강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장미선의 계획임이 드러난 이후부터 영화는 흐름이 완전히 바뀐다.
김기덕 감독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복수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복수극을 만들어냈다. 모성결핍인 사내를 어떻게 끌어내어 변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지, 그리고 나서는 강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자신의 목적을 향해 끌고나가는지, 모성이라는 것이 어떻게 표현될수 있는지, 인간이 자신의 복수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30년간 엄마없이 살던 인간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심지어는 가짜 모성도 인정하지 못할정도로 무너진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절벽까지 밀어붙여 결국 바닥까지 끌어내버린다.
영화의 주제는 궁극적으로는 돈이 인간을 어떻게 만드는가다. 새로 태어날 자신의 아이를 위해 스스로 손을 자르는 사람도 있고, 돈 갚을 시간을 벌려고 자기 아내가 사채업자에게 몸을 주겠다는 데도 말리지 않고,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끌려나가 얻어맞기도 하고, 어차피 갚지도 못할 돈이라며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이런 주제는 장미선의 입에서 직접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는 그 말 안에는 김기덕 감독이 이 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들어있다. 개인적으로는 사채업자 사장을 죽이는 것으로 암시된 그 장면에 방점을 찍고 싶은게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편으로 이 영화는 자비, 복수와 참회라는 틀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복수를 위해 발현된 모성의 끝을 보여주고, 결국 그것을 계기로 참회하는 강도의 모습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십자가를 끌고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자비라는 것은 결국 강한자에게 약자가 구걸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신이 아닌 강도에게 자비를 구할수 밖에 없는 약한자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사람들을 상해하던 강도가 결국, 자신을 저주하던 이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어주는 강도의 모습은 용서없는 참회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도 한다.
연기적 측면에서 조민수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이 좋다. 무표정에서 약간씩 묻어나는 감정 표현이 뛰어났다.이정진도 그리 나쁘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정진은 능동적인 변화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런면에서 약간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편집이나 음악같은 것들은 김기덕식의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불편한 영화다. 불편하지만 뇌리에서 쉽게 지울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사회의 어두운 면과 희망없는 사람들을 대놓고 수면위로 끌어냈기 때문이다. 허구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가까운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외면해서는 안 된다. 현대 사회의 알파와 오메가인 돈이 어떻게 사람들을 나락으로 밀어내는지 알아야 한다.
마지막 한 가지, 오늘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전세계 iTunes 음악 차트에서 1위를 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김기덕은 이 영화로 베니스에서 상을 타서 문화를 널리 알렸고, 싸이는 강남을 알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부유한 곳으로 알려진 강남이 알려지는 한편, 사채 300만원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그려낸 피에타. 어찌보면, 양쪽 극단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 영화와 음악이 동시에 국위선양을 하고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