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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9 파멸을 향한 질주 - 황해
나홍진, 김윤석, 하정우. 이 세명의 조합으로 흥행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었던 추격자. 그 이루 2010년 겨울에 이들이 다시 뭉친 영화 황해가 개봉을 했다. 2011년 신년을 맞아, 조금 뒤늦기는 했지만, 황해를 보게 되었다. 사실 작년말에 보려고 했는데 조금 미뤄지긴 했지만.

< 황해 >



* 스포 있음 *

황해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대단한 영화다. 뚝심이 느껴지는 영화다. 4부로 영화의 파트를 의도적으로 구분한 것도 그렇고 그 4개의 파트를 감독이 원하는대로 밀고나가는 뚝심이 보이는 영화다. 개인적인 평가이긴 하지만 그래서 좋은 영화냐라고 물어본다면 추격자 만큼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재미는 있다.

영화를 좀 살펴본다면 이 영화는 구남의 원 톱 영화다. 김윤석과 투톱 영화처럼 광고가 되고 있지만, 사실 영화의 모든 흐름은 구남의 선택으로 변화하고 발전한다. 다른 외적인 변수들이 발생하지만 결국은 구남이 그 변수들에 어떻게 반응하는 가에 그를 쫓는 무리들이 다시 반응하고. 이런 과정으로 영화가 이뤄진다.  

사실 이 영화는 둘의 대결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강력한 동기부여를 가지고 앞으로 달려나가는 구남과 그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김태원 사장의 패거리들, 면가의 패거리들까지. 1대 다수의 대결이다. 그리고 그 다수도 서로 반목하기에 연합할 수 없는 사태라는 것이 또다른 긴장의 축이다.

구남은 절망적 상황에서 시작한다. 면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정도의 절망적 상황에 처해진 구남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있다. 감독은 우리에게 구남에게의 감정적 동화를 위한 시간을 충분히 준다. 그래서 우리는 면가가 사람을 죽이고 오라는 제의를 했을때, 왜, 누가 시켜서라는 의문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에게는 한국에 있는 아내라는 강력학 동기가 있다. 이 동기는 구남에게 달려나갈 동력을 준다. 아내를 찾으러 갈 수단으로 이용했던 면가의 제안이 어느 순간 오히려 아내를 찾는 것을 방해한다 게다가 영화의 중반에 이 강한 동기가 무너진다. 아내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서 그의 동기는 바뀐다. 누가 이런 일을 시켰는가로.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것만이 남은 거다. (여기서 이 영화의 종반에 대한 아쉬움이 나타나는데, 하나의 동력을 잃은 구남에게 다른 복수라는,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찾기 위한 쪽에 무게를 실어줬다면 은행에서의 그런 마무리는 너무 설득력이 떨어진다.)

구남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입체적인 인물이다. 주어진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을 취해가며 극을 능동적으로 끌어간다. 면가나 김태원은 오히려 수동적이다. 구남이 벌린 판을 따라가며 그를 저지하려 애를 쓰는 과정에서 둘의 충돌이 일어나며 서로를 파멸로 끌어가는. 정면을 보고 서로 질주하는 기관차같은 느낌이랄까? 김태원은 그래도 확실한 모티브가 있다. 면가는 그런 거 없다. 도대체 왜 그는 구남을 그렇게 죽이려 드는 걸까? 애초에 왜 구남을 골라서 보냈을까? 이유 따위 필요없다. 그냥 그런 놈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모든 것을 이용하는 그런 놈일 뿐인거다. 추격자에서의 하정우의 역할처럼.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캐릭터의 성장과 발전으로 인한 공감은 어렵다. 구남에 대한 동정으로 인한 감정이입외에는. 그 대신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와 숨김없는 날것의 폭력, 강한 충격을 가진 잘 만들어진 추격신들의 매력으로 끌고간다.

영화의 시작에서 전반까지는 김승현 살해를 위한 구남의 노력과 꼬이는 사건에 대한 얘기로 끌어나가고, 후반부에서부터 진짜 얘기가 시작된다. 김태원이 모습을 드러내면서부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며, 꼬이고 꼬인 그들의 관계와 구남의 선택에 대해 보여준다. 이 영화를 왜 굳이 인위적인 4부 구성으로 잡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없지는 않았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각 부의 제목들은 영화를 구성하는 핵심인물들을 지칭한다. 1부 택시운전사는 구남, 2부 살인자는 김태원 (왜냐하면 구남은 누구를 죽이지 않았다. 비서는 살아있었으니). 3부 조선족은 면가를. 4부 황해는 말 그대로 황해를 뜻한다.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 모험이기도 하다. 관객들의 감정흐름도 끊어낼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래도 나홍진 감독은 잘 해낸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는 뛰어나다. 영화를 전체 다 해서 구남은 대사가 그리 많지 않고 액션과 표정으로 말한다. 하정우는 말그대로 구남이 된 것 같고, 면가의 김윤석은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같다. 조성하는 사실 이 영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비열하기도 하면서 여자를 뺐겼다고 분노해서 사람을 죽이려고 사주까지 하는 질투에 사로 잡힌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그를 잘 표현해냈으며 두 주연에 크게 밀리지 않을 존재감을 보여줬다.
 
추격신들의 연출은 힘이 넘치는데, 특히 차량 추격신은 지금까지의 차량 추격신들을 심심하게 만들 정도의 파워를 보여준다. 특히 트레일러 돌파장면은 기대 이상이다. 디테일한 연출도 좋고, 특히 구남이 계속해서 보는 깨진 거울, 깨진 액자를 보며 그것들이 보여주는 왜곡된 이미지가 그들의 운명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또, 리듬감을 놓치지 않은 전체적 연출의 흐름과 효과적인 노출의 기술은 나홍진 감독이 실력있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결국 이 영화는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간다.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처참한 현실로, 파멸의 길로 끌고가고, 서로를 마주보며 달려가게 하고, 남편에게 간다는 한 마디로 죽임을 당하고, 내연녀와 바람핀 놈을 죽이려다 자기도 죽고, 돈 좀 벌고 복수 좀 해보겠다고 덤비다가 죽고, 모든 것을 잃고 바다에 빠진다. 모두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파멸의 길로 걸어가고 있는거지. 

과연 마지막에 기차에서 내린 그녀는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바다로 떨어진 구남의 아내만이 황해를 통해 돌아갈 수 있었다는 표현이라고 본다. 황해는 구남에게도, 면가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살아서 건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줌의 재가 된 그녀만이 건널 수 있게 허락받은, 그곳이 바로 황해다.


P.S. 2011년 첫 영화는 트론이었는데, 비쥬얼로는 좋은 영화였다. 엔터테인먼트로서는 좋은 영화.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