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05 죽음의 중지 : 아직도 희망은 있어. 2
  2. 2008.11.24 눈먼 자들의 도시 : 인간에 대한 탐구 2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 책의 알파와 오메가인 문장이다. 우선 죽음이 멈춘다는 설정이 이 책의 시작이다. 언제나처럼, 주제 사라마구의 책이 그렇듯이, 이 책의 배경이 되는 곳은 어떤 나라다. 이 나라가 전작들인, 눈먼자들의 도시, 눈뜬자들의 도시에 나온 그 나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것이라고 추측은 해볼수 있다. (그러고 보면 그 나라도 참 불쌍하다. 몽땅 눈이 멀었다가 다시 돌아온지 얼마나 지났다고 선거에 무효표 소동이 벌어지고, 이번엔 죽음이 멈춘다니.)

* 스포 있음 *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수 있는데, 죽음이 중지된 이 나라를 관찰하는 전반부가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시점으로 살펴본다면, 후반부는 죽음의 시점에서 맞게 되는 하나의 도전에 대한 묘사로 채워진다.

새해를 맞은 시점부터 그 나라에선 아무도 죽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죽음이 멈추고, 당장 내일 모레하던 사람들이 죽지 않고 죽음의 직전 상태에서 계속 정체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국경을 지나면 죽는다. 또 개나 앵무새같은 가축들이나 동물들, 식물들은 죽는다. 죽음은 말그대로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만 멈춘 것이다. 이런 사태가 벌어지자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겠지. 여기서 현실적인 상황에 대한 관찰이 펼쳐진다.

죽음이 멈추면서 장의사들은 일거리가 없어졌다. 나라의 인구는 줄지 않고 늘어난다. 노인들이 죽지 않으니 연금을 계속 지급해야 하고, 국가 재정이 줄어든다. 세금을 더 걷자니 조세저항이 늘어난다. 교회는 사람들이 죽지 않으니 구원에 대해 설교를 할수가 없어서 난감해진다. 생명보험회사들은 해지하려는 고객들로 넘쳐난다. 일거리가 없어진 장의사들은 국가의 지원을 요청한다. 병원에는 죽었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고 계속 있으면서 병실이 모자라고 환자들을 받을 수 없다. 국민들은 국경을 넘어서 죽고 싶어하는 노인들과 병자들을 국경을 넘어서 불법으로 데려가 죽음을 맞게 만들고, 마피아가 생겨나 그것들을 대신해 준다. 마피아들은 정부를 협박해 돈을 번다. 죽음이 멈추면서 생긴 이 수많은 변화들은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준다.

이 책의 전반부는 위에서 살핀 것처럼, 이 나라의 전반적인 변화에 대해서 살펴본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넘어오면 책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이는 눈뜬자들의 도시의 전개방법과 비슷하다. 전반부가 그 나라의 혼란 상황에 대한 관찰이라면 후반부는 좀 더 세부적인 개인사를 살펴보는 데 집중하는 방식이다.

후반부는 죽음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죽음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사람들에게 죽음의 편지를 배달하는 데, 한 사람에게만은 그 편지가 전달되지 않고 계속 반송이 된다. 그 남자 첼리스트에게 편지를 직접 전달하고자 하는 죽음의 노력으로 이 후반부가 채워진다. 어찌보면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되는 설정이기도 하지만, 이 과정의 묘사는 대단히 흥미진진하다. 결국 그 남자에게 편지를 전달했는지 안했는지는 직접 확인해 보는게 좋겠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독특한 설정과 관찰에 있다. 죽음이 멈춘 사회에 대한 현실적 고찰은 죽음이라는 것이 사라진 인간사회의 혼란을 그리면서 이미 죽음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그만큼 가까이 있다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평소에 굉장히 멀게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막상 정말 없어진다면 모두에게 혼란이 오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후반부는 죽음의 의인화와 그녀에 대한 묘사를 통해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우리가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죽음의 시각화를 이뤄냈다고 할까? 죽음이 자신의 편지를 거부하는 첼리스트를 어떻게 할지 긴장감을 가지고 책장을 넘길수 밖에 없다.

인간과 죽음, 그리고 인간사회의 관계에 대한 관찰. 그것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방법으로 사라마구는 두 가지 방법을 택했다. 관조적인 전반부와 감성적인 후반부. 두 가지 부분이 완전히 떨어져도 괜찮을 정도로 분리될수도 있겠지만, 묘하게 융합이 되기도 한다.

주제 사라마구는 지금까지의 작품들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탁월한 묘사로 그 본질을 짚어내는 데 탁월한 작가다. 이 책도 그의 독특한 시각을 기반으로 한 작품으로 사라마구가 가진 인간과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이 깔려있는 작품이다. 다만, 이 책의 마지막은 다소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 마지막은 직접 확인하는게 좋다. 아무래도.




Posted by 파라미르
Telling you.../About Movies2008. 11. 24. 22:57
지난 해에 '눈먼 자들의 도시'와 '셀'을 비교한 적이 있었다. < http://strike96.tistory.com/21 > 인간과 사회에 대한 다른 표현방법에 대해 분석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말미에 헐리웃에서는 영화 안 만들꺼라고 했는데, 그 예측이 틀려서(=_=) 영화가 나왔다.

< 눈먼 자들의 도시 >


눈먼 자들의 도시는 영화화하기에 매우 어려운 작품이다. 질병의 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인간들이 무엇을 얻지도 못하고, 그들의 힘으로 뭔가 해결되지도 않고, 갑자기 모든 사태의 원인이었던 문제는 해결되고 만다. 영화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우르는 드라마적 서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그대로 상황을 던져주고 거기에 따라 반응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탐구해보는 영화인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실험이랄까? 그래서 영화는 많이 불편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이 멀게된 사람들을 수용소에 임시로 몰아넣기 시작한 것까진 좋았지만 도시 전체가 눈이 멀어버린 상황, 모든 사람들이 통제권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단 한명만이 눈이 보인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각자의 인간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그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방법들을 보여준다. 이 과정의 묘사들과 행동방식들이 꽤나 불편하다. 사실적이고 노골적이며, 포장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물질을 바라는 인간들이 물질이 더 이상 필요없어진 이후에 음식을 매개로 성을 착취하는 모습, 동물적 본능으로 냄새로 사람을 판단하고, 음식을 위해 사람이 죽어도 상관하지 않는 이런 극한까지 치달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사회의 제도가 이런 상황에 대해 얼마나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동시에 던진다.  ( 인간이 만든 사회시스템의 한계에 대해 작가가 던지는 질문은 눈뜬 자들의 도시 에서도 이어진다.) 

이 영화는 의문을 던지기는 하지만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는다. 실명사태는 갑자기 처음의 발병자로부터 눈이 다시 보이면서 끝난다. 인간들의 노력으로 원인을 찾고 해결한 것이 아닌 인간의 손으로 어쩔수 없는 문제인 것. 인간의 나약함과 인간성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나서 영화는 하나의 희망을 제시하고 끝난다.

이런 내용적인 측면을 제외하고 원작과의 비교를 좀 해본다면, 영화는 책을 충실히 옮기려고 노력한다. 원작에 묘사된 내용들을 비교적 충실히 옮기기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이 있다. 우선, 인종과 언어의 차이가 없는 원작에 비해 영화는 제작사가 소속된 일본의 영향 때문인지 가장 처음 눈이 머는 사람을 일본인으로 설정을 해 버린 바람에 어쩔수 없는 선입견이 생기게 된다. 또, 피부색의 차이로 인한 선입견도 생길 수 밖에 없다. 3병동의 사람들은 라틴계가 많았던 것처럼. 그러다 보니 원작처럼 어디에나 있을법한 사회라기 보단 왠지 미국일 것 같은 느낌을 자꾸 가지게 되는 것.
좋았던 부분은 도시의 혼란상을 표현하며, 원작처럼 애꾸눈 노인이 말하는 장면들만 간접적 묘사를 해 줌으로 해서 인간 자체의 본성에 대한 탐구보다 사고의 끔찍함으로 촛점이 넘어가는 것을 잘 차단한 것이다. 만약에 비행기 사고등의 장면들을 자세하고 길게 묘사했다면, 실명사태가 벌이는 사고에 더 촛점이 맞아 버렸을 것이다. 그걸 잘 끊어낸 것이 아주 좋았다.

전반적으로 불편함으로 무장된 영화일 것이 뻔했지만, 그 불편함안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가질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원작의 무게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잘 해냈다고 박수를 보내고 싶다.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