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ing you.../About Movies2009. 3. 12. 15:56
이전 글에서 닉슨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조금 얘기했었는데, 워치맨은 닉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만들어진 팩션 영화다. 이 영화는 전형적 히어로물과는 다른 시선으로 인간과 권력과 평화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 Watchmen >



앞에서 말했듯 닉슨이 보여주는 보수주의적 태도는 상당부분 베트남 전쟁에 기댄다. 이미 미국은 1, 2차 대전을 통해 전쟁이 가져다주는 파급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을 잘 활용해 왔다. 앞서의 전쟁들이 민주당 정권하에서 치뤄지고 그로 인해 보수주의자들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은 닉슨의 당선과 함께 호재를 만났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닉슨은 확실하게 베트남 전쟁을 이용해 보수주의 운동을 강화하고 그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전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하지만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반전여론이 커진 과정에서 닉슨은 승부수를 띄우게 된다. 그가 바로 워치맨의 한명인 '닥터 맨해튼'이다.

'워치맨'은 위의 상황에서 미국이 닥터 맨해튼을 이용해 베트남전을 승리로 이끌고, 보수주의가 승리하며, 닉슨이 대통령직을 사임하지 않고 계속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미국을 그리고 있다. 1940년대부터 Minute Men 이라는 슈퍼 히어로들을 이용한 자경단 같은 무리들을 만들어 그들을 이용해 대중적 관심과 대중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치는 가상의 역사를 그린 영화다.

(여기서 실제의 미국 역사와의 차이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실제의 미국 역사는 닉슨 사임후 베트남 전쟁은 실패로 귀결되고, 실망한 미국인들은 지미 카터를 뽑아 민주당 정권으로의 회귀를 택한다. 하지만 지미 카터도 미국 경제를 살리는 데는 실패하고, 결국 강경 보수주의자인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된다. 영화는 레이건이 당선되기 직전의 1985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워치맨에서 그리고 있는 슈퍼 히어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슈퍼맨, 스파이더맨등의 대단한 초능력을 지닌 이들이라기 보다는 육체적, 정신적, 지적으로 조금 더 노력한 일반인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영웅들이다. 그래서 그 자신의 캐릭터를 후대에 물려주고 자신은 양로원에서 여생을 보내기도 한다. 여기서 진짜 슈퍼 히어로는 '닥터 맨해튼' 한명 뿐이다. 그는 사고로 인해 능력을 얻은 슈퍼 히어로의 전형에 가까운 초능력을 지니게 된다. 닥터 맨해튼 역시 정부의 연구소에서 원래 일했었고 자연스레 워치맨의 무리에 끼게 되고, 그 능력을 알고 있는 정부는 그를 베트남전에 활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영화의 설정중의 하나인 케네디 암살의 범인이 코미디언이었다는 설정부터 살펴보면, 워치맨이 완전히 정부를 위해 일한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 있다. 당시의 케네디는 닉슨을 이기고 대통령이 된 인물이기 때문. 워치맨은 그래서 오히려 완전한 정부편의 인물들이라기보단 자경단이자 정부의 통제를 받으며 정부에 협력을 강요당하는 자유의지를 지닌 자벌적 슈퍼 히어로들로 정의할수 있다.

이제 영화를 조금 살펴보자. 이 영화의 오프닝은 1940년대부터 거슬러서 슈퍼 히어로 무리의 탄생과 역사적 사건들을 그리면서 그 역사의 과정에 어떻게 이들이 개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의 현대사를 간략하게 압축한 것과도 같은 오프닝은 효과적으로 미국의 현대사를 보여주고, 음악도 효과적으로 쓰이면서 그 당시를 표현해낸다. 코미디언의 장례식에서 쓰인 '사이먼 & 가펑클'의 'Sound of Silence' 같은 추억의 음악들을 적절히 사용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시대적 배경으로서의 음악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300을 만든 잭 스나이더 감독답게 적절한 슬로비디오 모션의 사용과 액션연출은 뛰어나다. 적절히 수위를 넘나들며 그래픽 노블의 영상화를 충실히 실현한다. 다만 구성이 조금 산만해 보이는 것은 어쩔수 없을것 같은데, 그것은 원작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어쩔수 없는 부분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은 권력과, 인간, 평화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줄거리를 조금 살펴보면 1980년대 냉전시대를 한계까지 몰고간 시대상황의 설정은 핵전쟁으로 인한 제 3차 세계대전이라는 위협을 닥터 맨해튼 한 사람이 짊어지고 억제하고 있다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워치맨 중에서도 유일한 실제 초능력자인 닥터 맨해튼은 핵전쟁이 일어나게 되는 이유가 에너지때문이라고 판단하고 화석 연료를 대체할 에너지 생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애정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결국 오지맨디아스의 계략으로 지구 곳곳에 닥터 맨해튼이 만든 원자로가 터지면서 그는 악마로 취급당하게 되지만 결국 평화는 유지된다. 이것이 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캐릭터간의 충돌이 이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어가는 힘이 된다. 코미디언은 보수층을 대표하는 몰락한 인물로 과거로의 회귀를 바란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오지맨디아스의 계획을 알게 된후에 그에게 살해당하게 된다. 오지맨디아스는 핵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을 역으로 이용해 닥터 맨해튼을 공통의 적으로 만들어버림으로 해서 인류의 평화를 추구하는 이상주의자이자 행동파다. 로어셰크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거짓된 평화보다는 진실을 택하는 소신을 지닌 인물이며, 나이트 아울과 실크 스펙터는 현실에 적응하고 사는 가장 현실적 인물이다.

이들이 영화의 종반에 충돌하는 장면이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크게 함축하고 있는 장면인데, 보통의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이 결국 참사를 막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기본적인 플롯이라면, 이 영화는 모든 사건은 터지기로 되어있고, 그 사건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최고의 클라이막스가 된다. 오지맨디아스는 이집트의 신들을 숭배하며 스스로 평화를 인류에게 주었다고 주장하며, 닥터 맨해튼은 방법론은 어떻게 되었든간에 인간들 사이에 평화가 찾아오는 것에 동의한다. 로어셰크는 잘못된 과정으로 온 평화는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과연 어느쪽에 손을 들어줄 수 있을 것인가가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그리고 닥터 맨해튼이 되어버린 존이 점점 인간에의 애정을 잃는 과정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히 전지전능한 신과 가까운 존재이다. 하지만 그가 그의 능력을 베트남 전쟁 종결에 쓰게 된다는 설정부터 의문을 가져보면, 그의 능력은 신과 같지만 아직 인간안에 갇혀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의 능력은 어찌보면 권력의 그것과 같다. 전지전능하게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결국 쓰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권력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결국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바로 그것. 그가 사랑했던 여자로부터 상처를 받고 화성으로 떠나버리는 모습을 보면 그가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가지게 되고 그 능력을 이용해 인간에게 뭔가를 해 주려는 의지마저 상실해 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이용당했음을 알면서도 결국 평화가 왔다는 대의앞에 과정의 잘못을 묵인해 버리고 인정해 버리기까지 한다. 신과 같은 존재인 존마저 이런데, 다른 나머지의 히어로들의 인간적 갈등이야 더 말할 이유가 있을까? 모두 각자의 상황에 맞춰 살아가고, 슈퍼 히어로의 활동을 금지한 법에 따라 현실에 맞게 각자 적응하고 살아간다. 신념과 현실의 괴리로 괴로워하면서.

당신 같으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현실을 잊을 수 있는 다른 것에 집착하는, 하지만 문제는 상존하고 있는 오지맨디아스?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가는, 하지만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로어셰크? 믿음은 가지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나이트 아울, 실크 스펙터? 자신의 능력이 잘못된 곳에 쓰였음을 알지만, 결국 대의를 위해 과정은 포기해 버린 닥터 맨해튼?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손을 들어주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 영화는 히어로물을 빌려와 인간, 권력, 평화라는 것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단순한 슈퍼 히어로물을 기대하고 왔던 관객들에게 비수를 꽂아 버리기는 했지만 주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만은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진화하고 있는 히어로 영화들의 다른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잭 스나이더 감독의 다음 행보가 더 궁금해진다.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