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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8.13 뭘 봤다구? - 악마를 보았다
Telling you.../About Movies2010. 8. 13. 08:59

우리에게 악마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뭘까? 붉은 악마라고 4년마다 월드컵때만 나오는 빨간 옷입은 그 악마말고. 악마라면 불신과 잔인함과 증오만 가득찬 악의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악마라고 칭한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안에 잔인함과 증오와 불신을 품고 있다는 것을 무의식중에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 악마를 보았다 >

* 스포 있음 *


영화가 개봉하기도 전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고 해서 이미 화제가 되어버린 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개봉날을 맞출수 있었다. 이미 언론 시사회부터 극과 극의 평가를 받기 시작했고, 일반 관객들의 평가도 갈리고 있는 추세다. 오늘의 객석은 이 영화의 평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러 커플들도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극장에 들어온 사람들도 있는 것 같았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여기저기서 낮은 비명이 쏟아졌다.

먼저 이 영화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잔인성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스너프 필름 만큼의 잔인함은 없으나 지금까지의 한국영화의 수위에서는 높은 수준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이 잔인한 묘사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 조금 생각을 해보자. 잔인한 영화를 우리는 수도 없이 봐왔다. 목이 댕강 잘리는 영화도 많고, 피가 분수처럼 솓구치는 영화도 있고, 헬기 날개로 좀비를 찢어죽이기도 한다. 잔인한건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영화의 잔인함이 더 불편한 이유는 그것이 현실과 너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앞에서 열거한 영화들에서의 잔인함은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이고, 현실과의 접합이 어렵기에 좀 더 가볍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우리네 얘기처럼 보이기 시작하면 말이 달라진다. 이 영화의 잔인함이 불편한 이유는 추격자의 그것과 같다. 정말 있을법한 얘기라 그런거다. 최근의 성폭행 살해 사건들과 이 영화가 오버랩되면서 그 불편함이 더해지는 거다. 악마같은 놈이 설치고 다니는데 저 놈은 왠지 정말 있을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런데 그 대척점에 선 사람은 있을법한 사람이 아닌거다. 현실에 미친놈은 많다. 그런데 그를 저렇게 응징해 줄 사람은 있을 법하지 않은 사람인거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어렵다. 우리를 김수현과 동일시하기 어려운 거다. 초반부의 감정이입을 위한 호흡은 충분하나 완벽한 동화는 어렵다.

또, 이 잔인한 묘사들의 역효과는 몰입의 방해다. 관객들은 모두 감정적으로 장경철의 반대에 서지만 잔인한 장면이 나올때는 빠져나오게 된다. 그 이유는 잔인함의 수위가 좀 높다보니 인간적으로 아프겠다고 느껴버리는 것이다. 잠깐의 순간이지만 장경철을 동정하게 된다. 묘사의 수위가 조금 낮고 간접적이었다면, 사실 우리는 완벽하게 김수현의 편에 섰을 것이다. 나홀로 집에 따위의 영화에서 악당이 당하는 걸 봐도 박수치며 웃지 누가 아프겠다라고 동정을 하며 탄식을 내뱉겠나. 근데 그 수위가 높아지니 관객들은 영화에서 빠져나와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적당한 객관성을 유지하게 하려는 감독의 의도였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양쪽 캐릭터 모두의 악마성을 보여주고 싶아하는 감독의 의도일지도. 누가 진짜 악마인지의 판단은 관객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악마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누가 봐도 장경철은 악마다. 그의 사회적 배경이나 성장배경 따위를 묘사하기도 하지만 상당부분이 생략되어 있다. 김수현은 악마인가 아닌가의 질문을 던지기 어렵다. 그는 장경철과 그의 친구들에게만 악마성을 표출한다. 그러면 악마가 아닌가? 그것도 애매하다. 무차별적인 분노의 폭발이냐, 선택적인 악마성의 표출이냐를 놓고 봤을때, 누가 진정한 악마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여기서 아쉬운 점이 좀 나오는데, 장경철은 사이코패스인 악마라 치고 김수현은 복수를 실행하며 내면의 악마성을 알아간다고 보기에는 초기 김수현에 대한 설정이 너무 부족하다. 단순히 국정원 직원이라는 설정만으로 다 풀어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보인다. 장경철의 과거에 대한 묘사는 조금 있는 반면, 김수현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다. 김수현에게 감정적인 동화를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좀 더 주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배우들의 대결에서는 완벽하게 서로 다른 호흡을 쓴다. 김수현은 차갑고 냉정하게, 장경철은 다혈질로 감정에 잘 휘둘리게. 연출의 방법에서도 김수현은 대사를 극도로 절제한다. 연출의 면에서도 얼굴을 극단적으로 당겨 잡음으로 해서 얼굴만으로 표현하는 그들의 감정의 힘이 대단하다. 특히 두 배우의 대결 장면은 힘이 넘치고 긴장감도 좋다. 이병헌의 표정 변화없이 눈물만 주룩 흘리는 연기나 눈밑을 미세하게 떠는 연기도 좋고. 최민식은 뭐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악마 그 자체를 표현해준다. 디테일이나 카메라 워크도 김지운 스타일을 충분히 살렸다. 특히 엔딩 시퀀스에서의 일대일의 대결이 백미다. 둘의 에너지가 폭발할 것같은 힘을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쓸데없는 역주행 장면 같은 것들이다. 불안한 수현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의도로 보이기도 하는데, 사실 그것이 그렇게 길 필요는 없었다고 본다. CG 티가 좀 많이 나는 장면들도 눈에 띄었고.

이 영화는 여성 관객들이 볼때 매우 불편한 영화임은 분명하다. 극중에 처제의 대사가 그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여성을 다루는 시각 자체가 편향적이며 약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변태적 성욕을 표현하기도 하고. 잔혹한 묘사들도 그렇고 여성 관객들을 싫어할만한 여러가지를 갖춘 이상한 여름 블록버스터라 하겠다.

또, 이 영화를 보다보면 각종 한국 사회의 범죄라는 범죄는 장경철이 다 저지르고 다니는 것 같다. 택시강도를 처리하는 착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그가 저지르는 악행들을 보고나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어쩔수 없으리라.

이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과 같은 볼편함은 없다. 박찬욱의 복수 3연작과 비교하면 잔인함의 수위는 올라갔지만 복수라는 것을 다루는 시각 자체의 차이가 있기에 박찬욱이 다루는 복수의 깊이보다 김지운은 복수를 다짐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게 변할 수 있는 가를 보여주어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 묘사한다. 박찬욱은 복수라는 것에 집착한 인간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파멸해 나가는 과정에서의 심리묘사에 중점을 뒀다면, 김지운은 그 대결에서 느끼는 긴장감과 인간들의 악마적 본성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다만, 그 깊이는 기대했던 것보다는 떨어진다. 잘려나간 1분 30초의 분량이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다시 붙여서 본다고 해도 매력적인 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현실적 사건들에 기반해 창조된 캐릭터와 판타지에 기반한 캐릭터의 맞대결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 한 영화다. 그 과정에서의 리얼한 묘사들이 논점을 흐리고는 있지만, 그런 묘사들이 인간의 잔인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이었다고 볼때, 이 영화의 잔인함이 그리 쓸데없이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뛰어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단순한 이야기에 여러 현실에 기반한 사건들을 섞어 풍부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기본 이야기의 힘이 떨어지기에 매력은 반감되었다.

현실적 악마인 장경철인가, 현실에는 있을 법하지 않은 냉혈한 악마인 김수현인가. 김지운 감독이 이 두 가지중에서 어느 쪽에 방점을 찍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볼때는 감독은 정중앙에 점을 찍었다. 판단을 우리보고 하라는 얘기겠지. 누가 악마인가? 결정할 시간이다.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