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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9.05 절망의 끝을 보다 -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2
인간의 잠재력은 위대하다. 우리는 육체의 능력을 뛰어넘는 힘을 발휘하는 수많은 경우들을 접한다. 그런 대부분의 일들을 보며, 우리는 그것이 육체의 힘이 아닌 정신력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어떤 경우에 발휘되는지 모른다. 여기, 그 힘을 자신의 딸과 자신을 위해 발휘하는 복남이가 있다.

<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 >

* 스포 있음 *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호평을 받았고, 개봉전에도 이미 화제가 되었던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은 뛰어난 스릴러 영화다. 영화는 힘이 좋다. 신인 감독의 솜씨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다. 이야기는 군더더기가 없고, 편집도 깔끔하며,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캐릭터들은 자리가 잘 잡혀있으며, 조연들도 자신의 자리를 잘 알고 무게를 잘 유지해준다.

조연들 중에서는 특히 박정학의 싸이코스러운 아버지 역할과 배성우의 색마 연기, 백수련의 연기는 극의 무게를 실어준다. 백수련은 아저씨에 이어서 이번 영화에서도 표독스런 독설을 날리며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그래도 이 영화는 서영희의 영화다. 영화의 초반 해원이 왜 무도로 도망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시퀀스가 지나고 나서 복남이 등장하며 영화는 전환점을 맞는다. 서영희는 까맣게 탄 얼굴로 능청스럽게 섬에서 30년간 살아온 아낙네 역할을 소화한다. 그러나 그 뒤에 숨겨진 과거와 해원에 대한 갈망을 조심스레 표출하며 해원에게 그녀가 바라는 것을 알리려 한다. 서영희는 복남의 절망스러운 상황을 절망으로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능청스럽게 연기한다. 절망의 끝에서 김복남은 태양을 마주하던 순간. 그 순간이 그녀의 삶을 바꿔놓는다. 이 시퀀스에서 그녀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제 더 이상 상황에 순응하지 않는 적극적인 변화를 꾀하기로 결심한 그녀의 파워는 연약한 여성의 육체를 넘어선 정신의 에너지로 모두를 정리한다. 그녀의 불친절한 세상에 대한 복수는 이렇게 비극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해원도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복남이 동네 남자아이들에게 성적으로 유린 당하는 것을 봤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것을 침묵으로 일관한다. 연희가 죽는 것도 목격했지만 침묵했고, 영화의 초반부에 촉행도 목격했고, 분명히 기억했지만 침묵했다. 결국 그녀의 침묵은 복남의 복수를 부르고 마는 것이다.

이 영화를 끌어나가는 가장 큰 힘은 드라마다.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섬의 사람들의 폭발할 것한 에너지가 충돌하며 빚어내는 드라마가 이 영화의 힘이다. 극의 처음에 나오는 해원의 에피소드는 결국 침묵하는 해원의 모습을 과거의 그것과 대비시킴으로 해서 복남과 해원의 어린시절의 트라우마를 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복남이 섬에서 떠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는 계기는 그녀의 딸 연희다.

섬이라는 고립된 세상에서 자신들이 스스로 만든 룰에 의해서만 지배받는 사람들. 그들 사이의 룰에 의해 희생된 복남은 그녀의 아이, 연희에게는 그 과거를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은 이미 어린시절부터 섬에 살고 있는 남자들에게 성적 노리개로 유린되며 살아왔으며, 그 중 한명과 결혼까지 하고 말았다. 연희의 아버지는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황이기도 하다. 가정 폭력으로 자신은 맞아가며 살고 있지만, 딸에게까지 손을 대려하는 아버지라는 놈으로부터 도망치려는 그녀의 최후의 몸부림은 결국은 연희가 죽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연희를 죽인 아버지는 물론, 섬에서의 룰에 지배당한 모든 이들을 죽이기로 결심한 그녀는 해원도 죽이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이야기다. 가정 폭력과 강간, 아동 성폭력까지 자행되는 섬에서 침묵하는 사람들.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만들어진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있을법한 느낌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어린 시절의 해원과 복남의 해맑은 모습이 더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린시절의 그 아이들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이런 비극을 만들어냈는지. 이런 무서운 이야기가 현실일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약간은 잔인하기도 하고, 많이 불편하기도 하다.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볼때, 저런 상황이 또 없으리라는 법이 없어서 불편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저런 불편함을 뛰어난 연출과 훌륭한 연기로 잘 빚어낸 보기드문 수작 스릴러 영화다.

P.S. 배성우라는 배우가 나오는데, SBS 배성재 아나운서의 형이란다. ㄷㄷ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