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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21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어른들을 위한 슬픈 동화 2
Telling you.../About Movies2009. 2. 21. 00:16

사람이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만약 사람이 거꾸로 나이를 먹는다면 어떨까? 간단한 질문에서 시작된 Fitzerald 의 단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은 이런 흥미로운 상상을 스크린에서 잘 풀어낸다.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The Curios Case of Benjamin Button >

브래드 피트가 아카데미상을 노리고 주연을 했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 영화는 평단에서나 관객들에게 꽤 인기를 끌었다. 이 영화가 처음 관객들의 관심을 끄는 첫번째 이유는 브래드 피트다. 그 다음은 시간이 거꾸로 간다는 흥미로운 설정.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영화를 3시간 가까이 끌어나가기에는 분명히 힘이 달릴 것 이다. 그래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가 궁금했는데,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힘이라기 보단 뛰어난 구성과 시나리오로 극을 끌고 나간다.

이 영화는 극중 극의 형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2005년 뉴 올리언스의 병원을 배경으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상륙하기 직전의 시간을 배경으로 병원에 누워있는 데이지와 그녀의 딸이 벤자민의 일기를 읽으면서 영화를 끌어간다. 거꾸로 가는 시계의 얘기와 벤자민의 자기 고백적 일기를 통해 초반 1시간 정도를 흥미롭게 채워나간다. 사실 초반 1시간은 호기심이 막 일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노인의 모습을 가진 아이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가 궁금하지 않겠나? 노인의 모습에서 나오는 브래드 피트의 얼굴과 그가 자라는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지에 대한 궁금함에 대한 묘사로 약 1시간 정도를 채워나갈 수 있겠지만, 그 뒤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고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흥미로운 소재를 넘어서 구성의 탄탄함으로 영화를 끌어나간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데이지가 있는 병원의 현재와 벤자민의 일기에 있는 벤자민의 과거 얘기를 시간적 순서대로 번갈아 풀어내며, 그 사이의 상호 작용을 이용해 갈등을 빚어내고 풀어낸다. 현실세계의 데이지가 병실에 누워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오는 상황을 맞게 되고, 딸에게 벤자민의 일기를 빌어 생부가 벤자민임을 밝히게 되고, 태풍이 결국 뉴 올리언즈에 상륙함으로 해서 거꾸로 가는 시계가 사라지게 되는 이런 구성은 잘 짜여진 태엽시계와 같이 잘 맞물려 돌아간다. 이런 플롯의 뛰어남 외에도 데이빗 핀쳐 감독은 곳곳에 본인의 색깔을 드러내는 장치들을 만들어 냈다. 가령, 번개를 일곱번 맞은 할아버지의 반복적 스토리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인생의 굴곡을 드러내주는 장치이며, 파리에서 데이지가 사고를 당하는 사정을 설명하는 장면은 패닉룸에서의 그의 연출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또, 1차 대전에 죽은 병사들이 시간이 거꾸로 흐르며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나 거꾸로 가는 시계를 만든 장인에 대한 연출등도 좋았다.

연출과 구성의 요소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면, 시나리오는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포레스트 검프의 각본을 쓴 에릭 로스가 쓴 각본은 마치 포레스트 검프 처럼 벤자민을 역사적 순간에 잘 집어넣는다. 배경이 된 도시는 뉴 올리언스다. 벤자민이 버려진 곳은 양로원이고, 그를 거둬준 이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불임인 흑인이다. 벤자민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역설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벤자민은 한글 성경에서는 베냐민이라고 불리는 야곱의 12번째 아들이다. 행운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다.) 벤자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가 정말 행운인지, 이 이상하고 흥미로운 운명을 지니게 된 것이 행운인지 불운인지의 판단은 관객들에게 맡긴 채, 영화는 벤자민을 운명의 틈으로 밀어넣는다.

벤자민의 삶은 탄생부터 죽음까지 매우 특이하게 흘러간다. 육체는 젊어지지만 반대로 그의 정신은 다른 이들과 같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정신이 자라게 된다. 벤자민의 근본적 고민은 여기에서 나온다. 그는 스스로 본인이 다르게 태어났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가 점점 더 어려질것임을 알고 있다. 그가 누릴 수 있는 잠깐의 행복마저도 자신의 특이함 때문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고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모든 재산을 아내와 딸에게 주기로 하고 길을 떠나는 그의 모습은 너무 담담하다. 심지어 아내와 눈이 마주쳤지만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갈길을 가는 그의 모습에서 오히려 슬픔이 느껴진다. 멀어지는 오토바이 소리가 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다.

또, 벤자민의 수명은 태어날때부터 정해져 있었다. 보통 사람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벤자민은 언제 죽을지 그의 육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고 본인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계속하고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의 일기와 엽서들은 받는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위한 기록들이기도 하다. 이 기록들은 데이지와 딸인 캐롤라인에게 그와의 끈을 묶어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가 된다. 또, 벤자민은 어린 시절 양로원에서 자라면서 이미 죽음에 대해서는 익숙하다. 양로원이라는 죽음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축복처럼 태어난 벤자민이 결국 아이의 모습으로 죽어가게 된다. 결국 영화는 벤자민의 죽음과 거꾸로 가는 시계가 카트리나에 잠기면서 끝이난다.

영화는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과연 어떤 것이 정상적인 삶인가에 대해 고민을 해 볼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고 보니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 브래드 피트와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뛰어나다. 브래드 피트는 10대부터 80대 노인까지의 표정연기를 잘 소화해 냈고, 말을 약간 씹어먹는듯한 뉴 올리언스 사투리 억양을 잘 소화해낸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도 뛰어나다. 골든 글로브에서 좀 발리긴 했지만, 두 배우의 연기는 아주 좋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좋은 시나리오와 잘 짜여진 구성, 배우들의 연기가 잘 맞물려진 좋은 작품이다. 비록 데이빗 핀처의 전작들처럼 독창적 연출이나 재기발랄한 오프닝은 없었지만, 또 러닝타임이 166분이나 되긴 하지만, 이 영화는 좋다. 어른들을 위한 슬픈 동화. 나이 들어감을 축복으로 느낄지, 저주로 느낄지는 우리한테 달린 것임을 잊지 말자.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