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31 2009 개인 영화 순위! 2
  2. 2009.05.02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박쥐 2
Telling you.../About Movies2009. 12. 31. 16:41

한 해가 다 지나가는 시점에서 2009년, 개인적으로 뽑아보는 영화 순위!

한국 영화

1. 박쥐 -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언젠가는 인정 받으리라.
2. 똥파리 -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독립영화의 힘을 메이저로!
3. 마더 - 봉준호의 디테일은 여전히 살아있구나.
4. 불신지옥 - 한국 공포영화에 새로운 기대를 품게 만들다.
5. 그림자 살인 - 최초의 탐정물, 시리즈로 만들정도의 캐릭터가 부족한 것이 흠.

외국 영화

1. UP - 꿈과 사랑에 대한 픽사식 접근
2. Avatar - 신세계를 경험하다.
3. Inglorious Bastards - 타란티노식 영화의 긴장감의 극단
4. Slumdog Millionaire - 원작과 완전 다르지만 영화만의 재해석이 빛난다.
5. Gran Torino - 노장은 죽지 않는다.
6. District 9 - 신선함을 알아본 거장이 꽃피운 새로운 SF
7. The Moon - 아이디어와 연기로 승부하다.
8.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 - 핀처와 피트의 조합의 새로운 결과물
9. Star Trek - JJ 아브람스, 짱 드셈. =_= ;b
10. Sherlock Holmes - 액션 영웅 홈즈의 귀환.

2010년 기대작은 또 무엇이 있을까? *_*




Posted by 파라미르

이성과 본능. 인간을 지배하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요소들이다. 본능에 따르기만 하면 이 사회가 얼마나 혼란할까, 또 반대로 이성만 따르는 사회는 얼마나 재미없고 가식적일까. 그래서, 이 두 개의 면의 균형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사회의 전체적 균형은 결국 개인들의 선택에 의해 유지된다. 누군가는 좀 더 이성적이고, 누군가는 좀 더 본능적이다. 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균형을 잡고 살아간다. 이런 사회에 인간이 아닌 존재가 나와 그 균형을 깨뜨리려 한다.

< 박쥐 : Thirst >

박쥐는 2009년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고 있었고, 예상대로 개봉하자마자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를만한 신기록을 만들어내며, 초반 흥행에 불을 붙이고 있다. 김옥빈과 송강호의 베드신, 송강호의 성기 노출에 대한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끄럽기는 했지만, 오늘 관람한 이 영화는 욕망에 다가가는 인간의 본능에 대한 고찰로서의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 스포 있음 *

우선 이 영화에 대해 공개된 많은 것들을 살펴보면, 흡혈귀가 되어버린 신부가 친구의 아내와 사랑에 빠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사실 이 영화는 그들이 만나 사랑에 빠지는 그 순간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이후가 중요한 부분이다. 이 얘기는 잠시후에 더 풀어놓도록 하겠다.

줄거리를 살펴보면, 상현은 사제로 아프리카에 희귀병인 Eve Virus 를 치료하기 위한 실험에 참여했다 백신의 부작용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수혈된 피에 의해 흡혈귀가 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상현은 500명의 지원자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신부로 여러 병에 걸린 신도들에게 추앙을 받는다. 그러던 중 친구인 강우를 만나게 되고, 그의 아내인 태주를 만나게 되어 그녀에게 빠져든다. 결국 그녀와의 사랑을 위해 사제직도 포기하고, 강우를 죽인 상현은, 태주와의 삶을 같이 영위하다, 태주의 고백으로 인해 진실을 알게되고 태주를 죽이게 되지만, 다시 그녀를 살려낸다. 태주는 욕망에 충실해 사람을 죽이고 피를 마시게 되고 결국은 그런 그녀의 욕망을 막지 못하는 상현은 그녀와의 자살을 택한다.

이 과정에서 감독은 몇 가지의 장치를 놓는다. 영화의 전반부에서의 중요한 설정은 사제라는 것이다. 사제는 본능을 거세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이성과 신에 대한 사랑으로 인간으로서의 성에 대한 본능은 없애버려야 하는 존재다. 그런 사제가 인간의 본능을 넘어선 흡혈귀로서의 본능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 그 본능이 인간을 사랑하게 되는 본능까지 자극해 버려, 이성을 잃어버려 폭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 대한 묘사가 박찬욱 감독 특유의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송강호의 연기에 의해 자연스럽게 묘사된다. 전반부에는 사제로서의 갈등과 박인환에 대한 설정으로 그 힘을 더한다. 나이많은 노신부이자 걷지못하고, 눈이 보이지 않는 그는, 흡혈귀로 변한 상현을 오히려 부러워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봤던 인자하고 지혜롭게, 모든것에 욕심내지 않는 성자같은 노신부가 아닌,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흡혈귀의 피를 갈구하는 그 모습이 상현의 선택에 힘을 더했으리라는 생각은 무리가 아니리라.

전반부의 단서들과 설정들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자연스럽고 무리없이 잘 이어진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병원에서의 첫번째 섹스신인데, 침대 머리맡에 놓인 카메라를 가지고 한 컷으로 둘의 육체적, 감정적 대화를 잘 묘사해낸다. 태주는 지금까지의 억압된 성적 욕망을 풀어내고, 상현은 성적 욕망에 더해 피에 대한 갈망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여기까지의 영화는 어찌보면 약간은 전통적인 흡혈귀와 인간의 사랑에 대한 영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태주에 의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능동적으로 상황을 조정해 가는 태주이기도 하다. 태주는 상현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기 위해 상황을 이용한다. 자신을 바라보는 상현을 이용해 강우를 죽이기 위해 의심이 갈 정황을 스스로 만들어내서 상현을 끌어들이는 것. 이전까지 그 인물 그룹들에 의해 태주가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모르겠다. 그 이전 얘기에 대한 묘사는 간략하고, 약간은 자극적이며, 극단적이다. 이 집단의 인물들, 강우와 그의 어머니, 오아시스의 멤버들이 그녀를 어떻게 성적으로 학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직접적 표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내가 보는 태주는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느끼는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주는 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해 매일 밤 밖을 뛰어다닌다. 상현은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맨발로 뛰는 그녀에게 자신의 구두를 내어준다. 이 부분이 이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이 되는 부분인데, 상현은 태주를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 운명이었음을 상징하는 부분이고, 이 신발은 영화의 제일 마지막 장면을 함께하는 두 사람을 이어주는 고리가 된다. 태주는 이런 와중에, 상현을 이용할 생각을 하게 되고, 스스로 만들어 낸 허벅지의 상처를 이용해 강우를 제거할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은 강우를 제거하는데 성공하게 되지만, 이번엔 그들을 찍어누르고 있는 죄책감은 강우의 모습으로 나타나 계속 그들을 괴롭힌다.

이 과정의 묘사도 아주 좋은데, 신하균의 사이코스러운 모습은 너무 자연스럽다. 특히 상현과 태주가 섹스를 하면서도 물침대가 젖었다는 착각을 하면서 계속 침대를 확인하는 모습과, 섹스신 사이에 자연스럽게 끼어있는 강우의 모습은 그들의 죄책감에 대한 확실한 묘사다. 그들은 그 죄책감과 온몸이 굳어진 강우엄마를 돌보며 살아가던 중, 태주의 얘기치 않은 실수로 치명적으로 흘러간다. 상현은 폭주하여 그녀를 죽이고 피를 마시게 되지만, 결국에는 그녀에게 자신의 피를 마시게 하고 자신도 그녀의 피를 마시며, 태주마저 흡혈귀로 만들어 같은 신발을 신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태주는 상현보다 더 적극적으로 피를 갈구한다. 상현이 사제였다는 과거에 얽매여 살인을 주저한다면, 태주는 욕망에 충실하다. 피를 위해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적극적으로 욕망을 따라간다.

상현은 수동적으로 그녀를 따라다니며, 그녀를 막지못하고, 방관자적 입장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다. 자신은 죽으려는 사람들에게서, 병원에서 훔친 피로 연명하면서도, 태주의 욕망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자신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일까? 그에 비한다면, 태주는 적극적인 입장에서 욕망과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산다. 다만, 제어와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여서 스스로를 파멸로 끌어가는 수준이라는 것이 문제.

욕망, 본능과 이성사이에서 갈등하던 상현은 결국 태주에게 제동을 걸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상현은 몇가지 선택을 한다. 이블린을 살려주고, 호각처녀를 강간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어, 신자들의 희망을 짓밟아 버리기로 한다. 상현에게 기도를 받으면, 나을수 있을거란 헛된 희망으로 수도원 앞에서 거주하던 이들에게 자신의 바닥을 보여주며, 희망을 없애버린다. 잔인하긴 하지만 헛된 희망을 가진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였을까? 상현의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나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신자들로 하여금 신에 대한 마지막 희망을 접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은 당연해 보인다.

결국 상현과 태주는 라여사가 보는 앞에서 자살을 택한다. 이 과정의 묘사도 좋은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살기를 희망하는 태주와 자신과 자신이 탄생시킨 태주를 없애버리려는 상현의 마지막 충돌장면은 잔인하기도 하면서 웃기기도한 박찬욱의 독특한 유머감각을 그대로 드러내준다. 상현과 태주의 자살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 영화는 박찬욱표 영화의 색깔들을 잘 유지하고 있다. 심각한 가운데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 감각. 관객을 압도하는 이미지. 잔인하면서도 직접적인 묘사. 적절한 생략과 상상으로 채워지는 장면들. 박찬욱만이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구원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흡혈귀가 아닌 만들어진 존재인 두 사람. 상현과 태주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멸로 몰고갔는지에 대한 묘사다. 욕망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선택해야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들의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왔는지에 대한 담담하지만 잔혹한 이야기다.

뭐가 옳은걸까? 이성을 택해서 신부로서 살아야 했을까? 정체성을 숨기고 자살하려는 사람들이나 인터넷에서 모아서 그들의 피나 빨아 먹으면서, 밤에만 움직이며 스스로를 저주하며 살아야 했을까? 욕망을 숨기고 허벅지나 때리며, 스스로를 책망하며 한 평생을 살아야 했을까? 상현의 선택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태주도 마찬가지다. 지옥에서 구해준다는 상현과 함께 욕망에 충실한,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갈구하던 그녀를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을까? 단지 다른 선택일뿐. 그 결과는 그들이 진 것이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처럼, 그들은 결국 끝으로 달려갔다. 무슨 교훈따위가 있을까. 수혈 조심하자 따위? 박찬욱이라면 이런 얘기 할 수도 있을지도.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 약간 얘기하자면, 송강호는 말할 필요도 없고, 이 영화에서 제일 돋보이는 연기자는 김옥빈이다. 다른 강한 조연들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포스를 보여줬다. 신하균의 사이코스러운 연기도 좋았고, 김해숙의 눈 깜빡임은 최고였다. 오달수와 송영창은 그리 존재감은 없어보였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호불호가 많이 갈릴 영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만고만한 재밌는 영화들을 벗어나고 싶다면 충분히 좋은 선택이 되리라 믿는다. 입소문도 중요하겠지만, 직접 보고 판단해봤으면 좋겠다.

P.S. 성기노출이 화제가 되고 있고, 극장에서도 여기서 나온다. 이런 말들이 들릴 정도로 그랬던 장면인데, 어떤 사람들은 한국 영화인데 그래도 되나라고 말도 하더군. 그런데 말이다, 그 장면에서 상현의 모습은 정말 힘없고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나약한 그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앵글이었다. 그게 만약, 그거 잘라낸다고 편집 다르게 했으면 의미전달에 문제 있었을 꺼다. 그 장면을 보면서, 대한민국 영화심의 기준이 발전한 것 같아서 내심 기분 좋았다. 단순하게, 성기 및 음모 노출시 무조건 삭제 같은 무식한 5공때 기준들이 많이 개선된 것 같아서 말이다. 정치는 다시 후퇴중이지만. ㅡ.,ㅡ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