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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05 더 리더 : 나에겐 삶일 뿐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엄청난 일들을 접하곤 한다. 우리 일상과는 별로 상관없이 멀리서 벌어진 일들. 예를 들면 용산사태나, 911 이나, 고베 대지진, 멀리 가보면 2차 대전, 그리고 유태인 학살까지. 그런데 이런 일들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한다. 직접 겪을수도 없고, 상상만으로 얼마나 끔찍했을까 싶은 일일뿐이다.

그런 일을 그 가운데서 직접 겪은 사람이 여기있다. 그녀는 그것이 단지 삶이고 일이었을 뿐이란다. 그녀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판사에게 반문한다. 판사님이라면 어쩌시겠냐고.

< The Reader >


* 스포 있음 *

이 영화의 주인공인 한나 슈미츠는 전쟁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미 전쟁이 다 끝나버린 1958년을 살고 있는 한나는 본인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모른다는 한나의 비밀은 그녀의 삶을 전쟁으로 만들어 버렸다. 전차의 차장 일을 하며, 하루하루 혼자 지내던 그녀의 삶. 유일한 위안은 따뜻한 물을 받아놓고 욕조에서 하는 목욕뿐. 그러던 그녀의 삶에 마이클이 뛰어든다. 한나는 마이클을 통해 휴식을 얻는다. 마이클은 그녀에게서 사랑을 느끼고 눈을 뜬다. 둘은 서로에게서 다른 방식의 사랑을 느낀다. 한나는 휴식을, 마이클은 육체를 통한 사랑을.

이 영화는 초반부에 그 색깔을 숨기고 마치 소년의 성적 성장기처럼 자극적인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나의 모습에서 이후에 벌어질 일을 잘 노출시키고 있다. 마이클과 한나가 처음으로 만나고 다시 아파트를 찾아가는 과정의 표현은 과감하기도 하고, 축약적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그리려는 노력도 없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나의 문맹을 드러내고 중요한 요소로서 부각시킨다. 그러면서 그 반대로 한나의 감정적인 측면에 대한 표현도 빼놓지 않는다. 그녀는 문자로 느낄수 없는 감정들을 음악으로, 누군가가 읽어주는 책을 통해 감성을 키워나가고 느끼는 것.

그런 그녀의 컴플렉스는 역시 글을 모른다는 것. 그 사실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은 한나. 그녀는 전차차장에서 사무직으로 승진을 시켜준다는 말에 오히려 그 도시를 떠나버린다. 아무런 말도 없이. 마이클과의 관계도 그냥 놔둬버린채 떠나버린다. 그녀에게 찾아온 잠깐의 휴식을 버리고, 그녀는 다시 전쟁을 찾아간다.

마이클은 상실감을 딛고 그녀를 잊고 대학에도 진학하고 법학도로 살아가던 어느날, 법정에서 그녀를 만나고 다시 흔들린다. 이번에 그녀는 2차 대전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감시원 일을 했던 과거의 일이 그녀를 법정으로 불러들인 것. 아시다시피 독일은 전범처리를 매우 철저히 했다. 그 과정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유태인 여자들을 이동시키다 교회에서 폭격으로 많이 죽은 일에 책임을 묻는 자리였는데, 한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책임을 넘긴다.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그 누명을 벗을수 있지만 그녀는 감옥행을 택한다. 그 짐을 진다.

과연 그녀에게 문맹이라는 사실이 세상에 밝혀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종신형과 바꿀만큼 그녀에게 중요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기 전에 아까 말했듯, 그녀의 삶은 전쟁이었다. 그녀에게 아우슈비츠의 감시원일은 그냥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다. 그냥 삶일 뿐인 것이다. 그녀에게 오히려 감옥은 안식처일지도 모른다.  감옥에서 마이클이 보내준 녹음 테잎들로 글을 깨우친 그녀는 죽음으로 세상과의 작별을 택한다. 글을 아는 그녀에게 펼쳐질 세상은 더 가혹해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교도소 식당에서의 마지막 만남이 그녀를 결심하게 만들었을까. 마지막 두 사람의 손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죽음을 결심했나보다.

마이클은 한나를 만난 이후 삶이 바뀌었다. 그녀를 잊지 못하고 온전한 삶을 살지못하던 그는 이혼후에 한나를 위한 책을 녹음하며 그녀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막상 세상에 나오려는 그녀에게 전달된 망설임 때문일까. 그녀는 자살하고, 그녀의 둥지안에서 눈물을 흘린다. 이미 그는 그녀가 떠난 자리에서, 그녀와의 첫 이별뒤에 그녀의 침대에서 눈물을 흘린적이 있다. 두번째에도 그녀를 잡을 수 없었던 후회일까. 하지만 그는 두번째 이별후에는, 그녀를 위해 할수 있는 일을 한다. 그녀의 뜻대로 그녀의 재산을 기증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딸에게 알려주고,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소통을 하려 한다.

전쟁같은 삶을 살고 있던 그녀에게, 전쟁은 그냥 삶이다. 그것이 그녀의 삶인 것이다.

케이트 윈슬렛은 한나의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삶을 우직하게 표현해낸다. 불안한 듯 굴리는 그녀의 눈은 한나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이클 역할을 맡은 랄프 파인즈와 아역배우의 연기도 뛰어나다. 연출면에서 안정적이고 자극적이지 않은 연출로 좋은 작품의 질을 유지한다. 무리한 음악의 사용이나 과도한 카메라 이동보다, 정적이면서도 여운을 살리는 화면 구성을 보인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한나와 마이클이 전차에서 앞칸과 뒷칸에 타서 어색하게 눈빛을 교환한후, 멀어지는 전차를 오래 잡고 있는 부분이었다. 둘 사이에서 뭔가 터질것 같다는 느낌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바로 폭발시키지 않으면서 더 감정선을 살렸다고 본다.

이 영화로 케이트 윈슬렛은 꿈에도 그리던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았다. 그녀는 상을 받을만 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은 케이트 윈슬렛보다는 한나의 삶이다. 그 전쟁같은 삶에서 결국 그녀가 읽고 싶어했던 책들을 깔아놓고 죽음을 택한 그녀의 삶 말이다.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