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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8 어른을 위한 나쁜 동화 / 하녀
Telling you.../About Movies2010. 5. 18. 00:47
김기영 감독의 하녀는 한국 영화의 고전이라고들 한다. (본 적은 없다.) 김기영 감독은 한국 B 급 영화의 창시자라고도 하는데, 이 영화가 임상수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주목 받고, 파격노출이라는 광고 카피로 지난 주말 예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하녀 >

* 스포 있음 *


리메이크라고는 하지만 사실 inspired by 정도로 보는 게 맞아보이기도 한다. 제목만 차용한 수준의 재창조랄까? 원작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하녀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비현실이다.

전체적인 얘기전에 줄거리를 잠시 살펴보면, 은이는 유흥가 식당에서 일하며 하루하루를 꾸려가던 이혼녀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상류층의 집에 하녀로 취직하게 되고, 모든것을 다 가진 그 가족들 사이에서 생활하던 그녀는 주인 남자의 유혹에 빠져 관계를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모든 갈등들이 일어난다.

워낙 홍보 포인트가 노출과 칸 영화제에 쏠리다 보니, 이 영화를 단순하게 야한 영화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충격적인 정사씬 따위는 없고, 베드신도 두세번쯤 나오는 게 다다. 노출 장면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그 장면들이 묘하게 야하게 느껴지게 하는 힘은 있다. 에로영화처럼 대놓고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클로즈업 샷과 반대로 정적인 고정 프레임 샷, 천장에서 찍는 샷등을 조합하야 색다른 느낌의 정사씬을 만들어 내고, 그리고 관객들의 상상력을 이용한다. 자극적인 장면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대사를 문밖에서 병식과 같이 듣게 함으로해서 상상력을 이용하여 관객들 각자의 섹스 판타지를 이용해 영화를 야하게 느끼게 만든다. 야한 얘기는 여기서 접고.

이 영화에서 이 영화가 정말 이 세상의 이야기라고 믿게 만드는 리얼리티는 초반 5분이 끝이다.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여자와 그 여자가 자살한 자리를 들여다보는 은이까지만이 현실이다. 초반 5분동안 영화는 우리가 맨날 봤던 유흥가의 모습을 아주 디테일하고 가까이서 보여준다. 영화는 그 이후부터 비현실적인 세계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정말로 있을법한 리얼한 세계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놓고 없을법한 배경과 인물로 화면을 채운다. 대신 세부적 디테일은 더 살림으로 해서 비현실적 배경에서의 리얼리티를 더 살린다. 초반부의 여성의 자살이후, 영화는 비현실로 끝까지 채워나간다. 심지어는 제일 마지막에 나미의 생일파티마저 대놓고 비현실적이다. 마지막에 관객들이 기대하는 차원의 정리가 아니라 비현실의 끝을 보여준다.

영화 전체에서 인물의 제대로 된 배경을 제시하여 캐릭터의 입체감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은이와 병식은 그나마 자신들의 과거를 드러내기도 하고, 배경도 제시가 된다. 왜 이들이 하녀일을 하는지, 애를 가지지 못하고 이혼했었고, 유아교육과에서 공부를 했었다는 과거를 드러냄으로 해서 은이의 행동에 정당함을 부여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집에서 사는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럴 의도도 없다. 그나마 훈이 모든 걸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 집안사람들이 다 그렇다는 단순한 배경만을 제시할 뿐이다.

이런 식의 전개로 감독은 극명한 대비 효과로 극의 몰입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방해한다. 초반 5분의 극명한 현실의 관찰로 인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면서 동시에 불안정한 카메라 이동과 불편한 시점의 설정으로 극중 인물과의 완전 감정이입을 방해하며 영화의 현실성, 비현실성을 동시에 유지한다.

캐릭터의 면에서는 성장하는 두 하녀인 은이와 병식이 입체적 인물이다. 그 외의 다른 캐릭터들은 평면적으로 주어진 성격에서 발전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정재가 연기한 훈이라는 인물의 에너지가 너무 약해서, 영화의 중요한 메인 캐릭터라고 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이차원적 인물인 훈은 계속 애매하다. 초반부에 자신만만한 태도는 어느 순간엔가 접어들고, 폭발해야 할 시점에서 폭발하지 못해서 초반의 에너지를 후반부에는 비웃음으로 스스로 바꿔버린다. 서우가 연기한 '해라'는 그와는 정반대의 경우다. 초반에서의 부족한 힘을 후반부에 강하게 분출해서 캐릭터의 힘을 살린다. 박지영이 연기한 장모는 일관성있는 캐릭터다. 조연의 역할은 충분히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인 은이는 능동적인 캐릭터이다. 능동적으로 하녀가 되기로 결정하고, 그 집에 제발로 찾아 들어간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던 그녀를 가로막는 주인집의 사람들에게 그녀는 능동적으로 대처한다. 찍소리를 내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녀를 그곳까지 몰고 간 그 집 사람들에게 그녀가 할 수 있는 복수는 그것밖에 없었나하는 의문을 스스로 가져본다.

사실 마지막 그녀의 선택은 관객들이 기대하는 일반적 스릴러와는 완전 다르다. 일반적이라면 은이가 병식과 혐력해 가족들에게 처절하게 복수한다거나, 아이를 납치한다던가 하는 스토리로 가지 않겠나. 그런데 임상수 감독은 하녀가 고를 수 있는 마지막 선택으로 극단을 택한다. 그런데 그녀의 선택은 스스로는 찍소리라고 할지 몰라도, 그 가족들에게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하녀라는 제목의 의미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가족은 은이를 하녀처럼 부리고 있었지만, 하녀였던 그녀는 스스로의 선택을 만들어 내고, 그 현실에서 빠져나왔지만, 영화의 마지막까지 그 가족은 서로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훈은 아내를 개같은 년이라고 부르면서도, 자신의 아이를 낳아준 그녀와 살고, 해라도 남편을 개새끼라고 부르면서도, 그가 가진 돈을 포기하지 못하고, 장모도 사위의 돈과 지위에게 여전히 매여있다. 정말 자유로운 선택을 하고 있는 사람은 병식과 은이 뿐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 보니, 그 집안에서 가장 상전은 나미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그 조그만 아이가 그 돈많고 아무거나 못대로 한다는 부모들을 자신을 위해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는가.

이 영화는 단순하게 야한 에로틱 스릴러 물처럼 기대하고 온다면 많이 실망할 것이다. 이 영화는 어른들을 위한 나쁜 동화다. 이 나쁜 동화는 이렇게 묻는다. 과연 당신이 보기에는 누가 진짜 하녀인가?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Posted by 파라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