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20만 관객(배급사 추산)을 4일만에 끌어모은 괴력의 영화 놈놈놈을 보고 왔다. 개봉 이전부터 워낙 말이 많고 기대도 많이 하게 했던 영화였지만 막상 개봉을 하고 나니 좋지 않은 평들이 여기저기서 들리기에 기대치를 조금 낮추고 봤다. 그랬더니 그 결과는.......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놈놈놈은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의 웨스턴 영화는 아니다. 6-7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B급 웨스턴 영화의 피를 이어받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시대의 변화에 맞게 그 규모와 기술을 대폭 업그레이드해서 더 볼만한 영화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을 빼 먹었다.
기술의 발전에 걸맞는 이야기의 발전은 놓치고 말았다. 간단히 말하면 액션과 카메라 움직임은 좋지만 그것은 이야기를 위해 있는 것이란 걸 간과한 것. 영화가 개봉하자 마자 쏟아지던 빈약한 스토리에 대한 언급에 대해 약간 걱정은 했지만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아쉬움은 더해 갔다.
영화는 시작부터 모든 것을 오픈하고 시작한다. 지도의 존재부터 어디로 가는지 누굴 이용해서 막으려는지에 대한 모든 것이 오픈되며 시작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캐릭터들을 등장시켜 극의 축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임에 분명하고 또, 캐릭터들의 등장 비중의 균형을 맞추려는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그 이후의 진행까지 완전히 열려있다는 것이 문제. 복잡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촘촘함이 문제인 것이다. 극을 이끌어 나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시나리오와 캐릭터의 조화이다. 놈놈놈의 문제는 개성있는 캐릭터는 있으나 시나리오가 캐릭터에 밀린다는 것. 정우성은 극중 이름보다 정우성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고, 송강호는 언제나처럼 재미있고 개성있는 윤태구의 이미지를 제대로 구축했지만 역시 송강호의 이름이 더 불려지는 것이 자연스럽고, 이병헌은 그나마 변신을 좀 소화했다. 스모키 분장의 어색함은 있었으나 악역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성공한 듯 보인다. 문제는 이 캐릭터들의 조화를 유지하기 위한 시나리오의 힘이 부족한 것.
이야기를 조금 더 복잡하게 끌고가려고 나온 마적들은 왜 나왔는지가 분명하지 않을만큼 애매한 위치에서 극의 끝까지 이래저래 헤매다 끝난다. 일본군은 후반부에 대규모 폭발신을 위한 조연에 불과하며, 정우성의 장총 돌리기 액션신을 위한 보조 연기자들이다. 엄지원, 이청아, 오달수는 왜 나왔는지도 모르겠고, 류승수가 그나마 조연급중에서 제 역할을 해 줬다.
게다가 액션신들의 존재의 이유는 스토리의 발전을 위함인데 그 소기의 목적을 망각한 채 액션의 향연에만 빠져 있다. 정반합의 원리에 의해 스토리가 발전하는게 아니라 단순한 나열에 불과한 것이 가장 큰 문제. 사막에서의 추격신을 지루하다고 보신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런 액션 영화의 바이블 격으로 보는 '레이더스' 같은 영화를 보면 모든 액션은 하나의 결과를 위해 합이 딱딱 맞아 이어진다. 놈놈놈의 그것도 완전히 이어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얘기를 이끌어 나가는 수준은 된다. 그렇지만 그 과정의 치밀함이 떨어진다는 것. 유기적으로 결합된 액션신이 나왔으면 그 대규모 추적신이 조금 더 살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 외의 부분들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운드는 저음도 풍부하고 박력있는 사운드를 들려준다. 음악도 기존의 웨스턴 무비 같은 전형적인 음악이 아니라 달파란과 장영규가 합작한 음악은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를 뽑아냈다. 타이틀 곡인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는 단순한 멜로디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정우성 띄우기에 제대로 사용된다. 사운드와 대사전달의 문제는 정우성만 빼면 양호하다. 여전히 웅얼거리는 그 놈의 대사능력만 좀 고치면 좋겠다.
종합적으로 볼때, 이 영화는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와 시나리오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나게 해 준다. 액션신은 시나리오 없이 놀다가 너무 많아져서 극에 대한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흐름을 저해한다. 그래서 더 아쉽다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편집 좀 다시해서 좀 많이 덜어내면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김지운 감독이 이번에 욕을 좀 먹을테니 좀 기운내서 다음 영화에선 좋은 결과 냈으면 좋겠다.
P.S. 이 글을 쓰다보니 예전에 '무사'를 보고 적었던 감상평이 자꾸 떠 오른다. 접어두니 읽어보시든지. 그 영화야 말로 과유불급 영화의 원조였으니......
2000년 11월 4일. 서울극장에서는 ''리베라메''와 ''단적비연수''가 극장에 걸렸다. 같은 날에 두 블록버스터가 개봉을 하기로 하면서 서울극장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두 영화의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다 모였고, 화려한 무대인사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결국 두 영화는 제작비나 건질만한 정도의 흥행을 하고 관객들에게 외면을 당했다.
''단적비연수''를 보며 우리 관객들은 우리 무협영화에 대한 실망감을 엄청나게 쌓았다. 환타지이기 때문에라고 아무리 치부해 보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으니까 말이다.
''단적비연수''와 ''무사''는 얼핏 닮았다. 강제규 감독이 메가폰을 잡지는 않았지만 그의 입김이 무쟈게 많이 들어간 영화고 캐스팅도 그에 못지 않게 화려했다. ''무사''는 김성수 감독이 감독을 했으며, 캐스팅도 최고의 캐스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이니까. 하지만 두 영화는 분명히 다르다.
''단적비연수''는 순수한 창작물이다. 완전한 환타지로써 모든 세계와 의상, 무기등 모든 것을 창조해 냈다. ''무사''는 우리 역사에서 많은 것들을 빌려와서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냈다. 관객들은 어느 것에 더 친숙함을 느끼고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게 될까? 단연 ''무사''의 승리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와 그에 기초한 인물들은 어설프게 창조된 환타지보다 훨씬 더 잘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지금의 우리들이 용호군과 주진군이 무엇인지, 그 당시 불가와 유가의 대립에 대해, 향리들과 당시 군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무시하고서라도 고려라는 말 한 마디에도 우리는 우선 거부감을 접고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빌려온다고 하여 모든 영화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무협영화라는 장르는 제작사들이 선호하지 않는 장르임에 분명하다. 의상과 세트를 만드는 것에 드는 제작비 정도면 고만고만한 멜로 영화 몇편을 만들어 낼수 있을 정도니까. 1년에 만들어지는 우리 영화중에서 무협물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거의 없거나 1년에 1-2편정도니까. 그만큼 우리 나라에서 무협영화는 비흥행 장르이다. 김성수 감독이 ''무사''라는 무협영화를 만들어 낸 것은 대단한 용기다. 그만큼의 자신감도 있었겠지만.
< 무사 >
무사는 그냥 그렇고 그런 무협영화가 아니다. 무사는 무협이라는 소재를 이용한 로드 무비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레인맨''처럼 형제가 여행을 하며 갈등을 겪고 서로를 이해해 가듯, 여러 개성을 가진 인물들이 함께 여정을 헤쳐나가면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그늘 아래에서 자란 최정장군. 그는 여러가지 실수로 일행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그들을 리드해 나가기도 한다. 그는 결국 마지막에야 진정한 리더쉽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부용공주. 명나라의 공주. 그야말로 공주다. 철이 없는 모습을 많이 보며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던 그녀 역시 마지막에야 자신에게 주어진 짐과 책임을 깨닫고 성밖으로 나간다. 그녀는 이 여정을 통해 많이 성장한 것이다. 단생 역시도 비겁하고 자신만을 생각하던 나약한 인간이었으나 여정을 겪으며, 계속 성장해 나간다. 자신의 아내를 생각나게 하는 한족 여인의 출산을 위해 목숨을 걸고 물을 뜨러 가는 모습이나 도망치지 않고 원군과 맞서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의 성장을 느끼게 된다. 지산과 주명도 서로 대립하던 모습에서 끝에 가서는 서로를 이해하고 돕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주명은 눈앞에서 자신의 나약함으로 2명을 잃고난 후에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 아이를 지킨다. 주명이 더이상 책임을 피하며, 입신양명에만 눈이 먼 나약한 유생이 아님을 알게 되는 시점이다.
그에 더해 가남과 진립이라는 두 기둥을 세움으로 해서 마치 RPG 게임을 보는 듯한 느낌도 더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가남은 최정을 옆에서 끝까지 지킨다. 그의 모습에서 많은 이들이 남자의 향기를 느낄수 있지 않았을까? 진립은 영화 전체에 균형을 잡아주고 있는 인물이다. 여솔과 최정의 대립과 인물들간의 갈등을 억눌러 주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그들의 유품을 안고서 고려로 가는 배에 혼자 오르는 모습에서 그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한다.
여솔은 상대적으로 그리 크게 성장하지 못한 듯 하다. 시종일관 강한 눈빛과 멋들어지게 휘두르는 창을 제외하면 별로 남는 건 없다. 가장 멋있게 들려야할 대사인 ''난 한사람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라는 말도 그리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바로 직전에 그 한사람에게 아무런 망설임없이 창끝을 들이댄 그였기에...... 그가 일말의 갈등도 없이 창을 갖다댈때엔 별로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겠던데......
무사에서 이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어느정도 고개를 끄덕일수도 있지만 이것이 무사의 약점이 되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성장하는 입체적 인물들이 3차원적인 인물이 되지 못하고 2.5차원적 인물에서 왔다갔다한다는 것이다. 인물자체만 놓고 봤을땐 충분히 입체적이지만, 서로간의 감정곡선이 제대로 매치되지 못하면서 감정의 비약이 이루어지고, 각 장면들은 연결성을 놓치고 붕 뜨고 만다.
최정장군이 가남에게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는 건 딱 한번이다. 느닷없이 왜 갑자기 아버지 얘기를 꺼내는 걸까? 그가 갑작스레 아버지의 얘기를 꺼내게 되기 전에 그가 그런 얘기를 하게 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또, 최정이 장군으로서 힘든 결정을 내려왔다는 약한 얘기를 꺼내는 부분 마찬가지. 갑자기 화면이 붕 뜨면서 느닷없이 최정이 그 얘기를 꺼내자 관객들은 조금 당황하면서 주진모의 약한 대사 처리에 웃음을 짓게된다. 이 사이에 분명 감정의 2, 3차 상승을 위한 치고 받음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분명 러닝타임 문제때문에 잘렸겠지. 그러나 무협씬을 조금 줄이고서라도 이런 장면에 신경을 썼으면 더 공감할 수 있었을텐데...... 여솔과 부용 역시 둘 사이의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너무 부족했으며, 부용이 느닷없이 최정에게 왕실을 나온 이유에 대해 얘기하는 모습에도 준비가 부족했다. 전면에 서 있는 화려한 전투신들에 비해 인물간의 관계에 대해 깊이를 두지 못했다.
하지만 세세한 설정들에 있어서는 만족할만한 점수를 주고 싶다. 주인공들과 관련된 것들이 너무 부족한 반면 조연들에 대한 다양한 장치들은 영화의 잔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미련 곰탱이인 아내에게 가고 싶어하는 넘, 보약을 잘못 먹어 아직 장가도 못간 넘. 능력 좋아서 18살에 애아빠 된 넘...... 이런 다양한 설정들은 그 조연들에게 매력을 느끼게 한다. 특히 마지막 하일의 얼굴을 쓰다듬는 미친 노인의 말은 가슴을 찡하게 하고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한다. 문제는 이러한 설정들이 주인공들... 삼각 관계를 이루는 세 사람에게서는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무사''에서 또 하나 주목할만한 점은 음악이다. 한국 영화 사상 이렇게 멜로디가 확실하게 머릿속에 남는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다른 영화들도 엔딩 타이틀에 나오는 가사 있는 노래들이야 다 잘 기억하겠지만, 전투신사이에서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 ''무사''의 음악은 또 하나의 개가다. ''무사''의 음악이 ''스타워즈''나 ''슈퍼맨''이나 ''죠스''처럼 확실하게 각인될 만한 그런 음악은 아니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확실히 ''무사''의 이미지를 심어두고 있다. 특히 가남이 성밖으로 뛰어나가는 장면에서의 보컬이 실린 음악은 가남에게서 남자의 향기를 물씬 베어나오게 만드는 비장미 넘치는 음악이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이 무사에서의 어설픈 주진모의 대사와 너무 멋있게만 그려진 정우성, 철없는 공주역에 그치고만 장쯔이의 연기는 영화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안성기의 연기는 주진모와 정우성과 장쯔이의 빈 구석을 메우고 있기는 하지만 왠지 부족해 보인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나머지 조연들의 연기덕에 많이 채워지기는 하지만......
이제 그 남은 부분은, 화려한 액션과 유혈이 낭자한 화면으로 채워진다. 눈을 치켜뜨고 고개를 30도정도 아래로 숙이고 싸가지 없게 상대방을 째려보며 창을 들고 뛰는 정우성과 쏘면 다 맞는 안성기와 용기만 좋은 주진모, 그 뒤에서 그를 지키는 가남과 주진군들. 이들은 영화 내내 자신이 몇명이나 죽였는지도 모를 만큼 사정없이 베고, 찌르고, 팬다. 그 액션들은 정말 멋있다. 하지만 너무 많다.
다양한 장소에서의 전투는 괜찮은 설정이다. 사막에서의 원군과의 만남, 계곡에서의 습격, 벌판에서의 마차 추격씬, 숲속에서의 전투, 마지막 공성전.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가지의 방법으로 전투를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 길다.
김성수 감독은 예의 그 짧은 편집으로 가까운 거리에서의 전투를 역동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문제는 조금 보다보면 저게 우리편인지 아닌지, 누가 죽는건지, 정신이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우리가 이겼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슬로 비디오로 주인공 일행이 죽을때쯤에야 아 쟤네들이 죽는구나 싶다. 김성수 감독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고, 그 스타일대로 화려한 액션들을 만들어 냈지만, 그 호흡에는 문제가 있었다. 화려한 액션만이 무사의 전부는 아닐진데, 김성수 감독은 무사들을 말그대로 그냥 무사로 만들어 버렸다. 무사라는 말 앞에 좀 다른 수식어가 붙었어도 좋을텐데......
무사는 괜찮다. 꽤 괜찮다. 액션들을 보기에도 괜찮고, 어지간히 감동도 있다. 너무 잔인하기도 하고, 좀 억지스러운 면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 왜냐고? 무사가 이룬 성과는 대단한 것이니까. 70억의 제작비나, 올로케나, 이런 것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200개 가까운 극장을 잡아버린 것이 제일 대단하다.
근데 그만큼 관객들이 다른 영화를 관람할 자유를 빼앗았으면 좀 더 잘 만들었으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작품이다라는 말을 한 마디 할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