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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8 에쿠우스 : 누가 누구를 판단하랴. 2
에쿠우스는 75년부터 무대에 올려진 장수 연극이다. 송승환과 조재현도 예전에는 알란 역할로 에쿠우스 무대에 올랐었고, 28년만에 송승환은 다이사트로 돌아오고, 정태우, 류뎍환이 알란으로 새로이 무대에 올려졌다.

에쿠우스 연극 자체에 대한 분석이야 워낙 많이 올려져 있으니, 뭐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겠지만, 개인적인 감상을 좀 풀어놓으려 한다. 에쿠우스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이 정상적인가' 하는 것이다.



알런 스트랑이라는 소년이 말 8마리의 눈을 찔렀다는 사건을 계기로 하여, 이 소년이 왜 그런짓을 하게 되었는지 판사는 다이사트 박사에게 정신치료를 의뢰한다. 이것이 이 연극의 시작이다. 그런데, 이 연극이 단순히 미스터리를 푸는 식의 간단한 구성으로 끝나지 않고, 복합적인 플롯과 입체적인 인물로 극의 풍부함을 살려낸다.

먼저 스토리에 대해 정리해 보자. 알런이 왜 에쿠우스와 말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부모들에게 있다. 무신론자인 아버지와 독실한 신자인 어머니, 이들은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 어머니가 방에 붙여둔 고통받던 예수의 사진이 있던 자리에 붙여진 소년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말의 사진, 그리고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마주한 말의 강렬한 느낌. 말에 처음으로 타게 되었지만, 부모에 의해서 강제로 끌려내려온 소년은 어느 샌가부터, 말을 본인만의 신으로 숭배하게 되고, 나이가 들면서부터 생기는 성에 대한 호기심을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다. 나이가 든 알런은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나 말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마굿간에서 일하는 질이란 소녀와 섹스를 하려다 실패하고 만다. 마굿간이라는, 알란에게는 신성한 장소인 마굿간에서의 섹스는 그에게 죄책감이 들게했고, 그의 행위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한 말들의 눈을 찌른 것이 이 사건의 개요다.

이렇게 사건을 정리해 보면, 이 얘기는 간단해 보인다. 변태적 성향을 가진 소년이 있고, 이 소년을 그 욕망을 제거해 정상적인 삶으로 만들어주면 되는 것이다. 법원에서는 이 소년을 정신병원으로 보냈으니 할 일은 다 한 것 같고, 정신병원에서는 정상인으로 만들면, 해피엔딩이지. 그런데, 이 연극은 이 정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결론에 딴지를 건다. 뭐가 정상적인가? 누가 정상적임을 판단하는 건가?

다이사트 박사는 스스로를 사기꾼이라고 칭하며 스스로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와이프와는 6년 넘게 키스 한적도 없고, 판사와의 대화를 즐기며,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알란의 아버지는 무신론자에 아내와는 사랑도 없고, 성인영화관에서 몰래 욕망을 해소한다. 알란의 어머니도 광적으로 종교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사람들과는 조금씩 거리가 있다. 그런데, 누가 정상적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누가 판단할수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정상적인 틀안에 있기를 바란다. 가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물론 있다. 그 틀안에서 벗어나 있으면 왠지 불안하고, 사회에서 뒤떨어진 사람인 것 같이 느낀다. 그런데 그 기준이라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정해진 것이냐는 것이 그 근본적인 질문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다이사트는 그 질문을 이렇게 바꿔서 우리에게 던진다. 이 소년을 치료해서 정상적으로 만들면, 이 소년은 도대체 뭐가 되는 걸까? 이것이 정말 알란 스트랑인가? 과연 이 소년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당신은 한번이라도 마음에 열정을 가져보았는가?
글쎄, 이 질문의 답은 스스로 던지고 스스로 답해봐야 할 것 같다.

이 외에 연극적인 구성을 좀 살펴보면, 이 연극은 꽤나 복잡한 극중극의 형태를 이용한다. 회전하는 무대를 이용하여 무대 활용도를 높이고, 세세한 소품의 사용보다는 마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디테일을 살린다. 공간의 이동은 간략하게 표현한다. 그래도 이 극에서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하는 것은 8마리의 말이다. 강렬한 남성성을 지닌 남자들을 말로 분장시킨다. 예전에는 말의 탈을 이용했다는데, 이제는 머리모양을 이용해 말의 머리를 표현한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말의 연기로 감정을 이입시킨다. 그래서 알런의 에쿠우스에 대한 열망을 동성애적으로 표현하는데 좋은 방법으로 쓰인다. 2막에서의 질의 노출연기도 예전보다는 수위가 많이 높아진 것 같다. 사실 그 정도까지 표현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였지만, 그건 연출자의 몫이니.

배우들의 연기는 아주 좋다. 송승환은 감정의 높낮이를 세심하게 조절하며 극을 이끌어 간다. 정태우는 광기에 사로잡힌 알란의 연기를 훌륭하게 해낸다. 말투와 크기외에도 손동작 같은 세심한 처리에서 그가 키워온 연기내공이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님을 알게한다.

이제 고작 1주일밖에 남지 않은 공연이지만, 아직까지 에쿠우스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번 경험해봐도 좋을만한 강렬한 체험이 될 것이다.



Posted by 파라미르